[남록지 인턴의 청춘연애] 국경을 초월한 사랑 … 더 넘기 힘든 '부모님 마음'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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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중앙DB]

요즘 대학가는 외국인들로 꽉 차 있다. 교환학생 제도로 외국에 나가는 한국 학생들이 많은 만큼, 한국으로 들어오는 외국 학생들도 많기 때문이다. 대학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캠퍼스 안에 외국인들을 위한 기숙사를 짓는다. 경희대학교의 경우 전교생의 약 8%인 2700명의 외국인 학생들이 같은 캠퍼스에서 공부 중이다. 주위에 외국인이 많고 수업도 함께 듣다 보니 대학가에서는 종종 한국인-외국인 커플이 눈에 띈다. 그들에게 국적은 딱히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부모님, 그리고 우리 사회에 국적은 큰 의미다. 철옹성 같은 태세로 ‘외국인은 안 돼!’ 하는 그들. 몰래 외국인과 연애하는 ‘자식들’의 변(辨)을 들어봤다.

1. 인도네시아 男: 피부색이 뭐기에

호주에서 만난 그 남자. 잘생긴데다가 집도 부자고, 키도 크고, 매너도 한국인보다 훨씬 좋고, 똑똑하고, 스킨십도 잘하고…콩깍지인지는 몰라도 진짜 멋있는 애였어. 처음에는 솔직히 꺼려졌지. 우선은 피부가 까맸거든. 왠지 모르게 싫더라고. 근데 ‘사랑에 국경 없다’는 옛말 틀린 거 하나도 없더라. 우린 호주에서 불타올랐어. 거리에서도 당당하게 다니고 스킨십도 자유로웠어.

문제는 내가 한국으로 돌아오면서부터야. 부모님께 “나 호주에서 만난 외국인이랑 사귀어” 말하기 참 어려웠어. 가뜩이나 호주로 유학 갔다 온 여자는 문란하다고 만나지 말라고들 하잖아. 우린 정말 그런 거 아니었어, 스킨십 진도는 빨랐어도. 또 인도네시아는 후진국이라는 인식도 있잖아. 너무너무 사랑하지만, 부모님한테 당당히 말을 못하겠는 거야. 또래 친구들한테 말할 때도 솔직히 쭈뼛거렸어. 애들도 되게 놀라고. 우리 엄마는 오죽할까? 날 때려죽일 거라는 생각부터 들더라고.

사실 제일 한심한 건 나야. 나도 무의식적으로는 이 연애가 ‘비정상’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한국에 놀러오겠다는 남친, 막게 되더라. 길거리에서 데이트하면 다 우리만 쳐다볼 것 같고, 이태원에만 있어야 할 것 같고…. 심할 땐 ‘얘가 백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도 했었어. 나도 내가 싫은데 남친은 오죽했겠어? 네 달 넘게 영상통화만 해야 했던 우리는 결국 헤어졌지. 솔직히 지금도 좀 많이, 후회돼.

-J 모(25, 경기대)양

2. 일본 女: 을의 연애

솔직히 한국 남자들은 외국인과의 연애에 대해 그다지 개방적이지 않다. 나도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관계를 원해서 만나겠지’ 싶었다. 편견이었다. 중국으로 유학길을 떠난 나와 일본인 그녀. 공항에서 처음 만난 그녀는 짐이 많아 보였다. 도와주겠다고 했더니 그녀, “I can do it!” 당찬 그 말이 마음에 남았다. 그냥 ‘그 사람’이 좋았다.

유학을 마친 우리는 멀리 떨어졌다. 그녀는 일본에, 나는 한국에 있다. 두 달에 한 번 꼴로 본다. 생각이 많아진다. 둘 다 결혼 생각을 해야 하는 나이다. 그녀는 이미 일본에서 직장을 잡았다. 한국에 와서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같이 살려면 내가 일본으로 가야 한다는 소리다. 일본어도 못하고, 아는 사람도 없다. 그런 곳에 그녀 하나만 보고 갈 수 있을까. 부모님은 “신중하게 생각해”라고 하신다. 아무래도 찬성의 뜻은 아니다. 그녀에게 양보하라고 할 수도 없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헤어지라고 한다. “너 정말 걔랑 ‘결혼’할 거야?” “나도 몰라!”

-Y 모(27)씨

요즘 TV 프로그램에는 종종 외국인 사위와 한국인 시부모가 등장한다. 하하 호호 웃으며 봐도 내 자식이 외국인을 달고 온다면? 상황은 540(180도+360도)도 달라진다. 하지만 부모들이 이유 없이 그러는 것은 아닐 터. 다 제 자식 잘 되라고 하는 말이다. 외국인과의 연애는 힘들다. 한국인들끼리도 치고 박고 싸우는데, 말도 잘 안 통하는데다가 식성까지 하나하나 모두 다른 외국인과는 어떨까. 2세는? 피부가 까무잡잡하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에서는 살기 힘들다. 결혼 후 자식이 외국으로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엄습한다. 부모로서는 쉽게 허락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다시 TV를 보자. 외국인 사위가 어설프게 “어머님, 사랑해요!”를 외치고, 싫은 듯 밀어내는 장모의 모습이 꽤 잘 어울리지 않는가? 중요한 건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사랑이란, 가족이란 그런 것이니까.

남록지 인턴기자 rokji12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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