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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한 표정 속… 이런 사연 저런 핑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아파트」특혜분양사건은 검찰이 7일까지 관련자 2백65여 명에 대한 조사를 마침으로써 1단계 수사가 끝났다.
연일 밤 11U시가 넘도록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검찰청사 주변은 소환자·보도진들로 붐볐고 사건의 윤곽·뒷 얘기 등이 만발.

<특혜분양 알려와>
○…이 사건은 청부 각 부처소속 공무원과 국영기업체·사회지도층 인사들이 골고루 관련됐다는 것이 특징. 「아파트」1채의「프리미엄」이 평균 5백만 원이었다니까 6백50동의 특혜분양은 결국 30여억원을「한국도시개발」이 흩날렸다는 얘기다. 정상분양이면 당첨입주자가 도움을 받거나 투기업자들이 이득 볼 것을「현대」측이 각계의 말발서는 사람들에게 선심을 쓴 셈이다.
상당수의 공무원들은 당초 이 같은 특혜분양이 있다는 것을 몰랐으나 한국도시개발 또는 현대「그룹」측에서 이를 알려와 비로소 알게됐다고 진술하고 있어 미끼에 말려 들어간 셈.
검찰의 한 관계자는『대부분의 공무원들은 분양 때 현대「그룹」측이 이렇게 대규모로 특혜분양을 실시한 줄 모르고 덤볐었다. 이들은 사원용「아파트」가운데 10여개 정도만이 자신 또는 자기가 속한 기관에만 특별 분양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유혹이 있을 때 거절하기가 어려웠을 사람이 많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마누라 때문에 이 꼴>
○…짧게는 1시간, 길게는 2시간이상씩 조사를 받고 나온 관련자들은 모두 긴장된 표정들.
『무덥고 지루한 여름입니다.』공교롭게도 고향후배인 P검사에게 조사를 받은 모부처 S국장은 P검사의 얼굴울 바로 쳐다보질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남편의 직위를 내세워 부인이 남편 몰래 계약했을 경우 남편과 부인이 같이 소환됐는데 이들은 대부분 약간 떨어진 채 말없이 걸어 들어갔다.
모부처 C국장은『보석밀수·도박사건이 터질 때마다 관련부인들의 남편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 꼴이 됐다』고 탄식했다.

<비서가 과잉 충성>
○…이 특혜분양사실을 분양자들이 알게된 것은 ▲현대건설 또는 한국도시개발 간부들이 미리 알려와 알게된 것과 ▲동료·친지들로부터 듣고 알게된 것 등 2가지 경우가 있다.
모부처 K기획관리실장은 현대건설 간부인 매부의 알선으로 48평 짜리를 계약한 것으로 밝혀졌다. K씨는 서울 용산구 동부 이촌동 R「아파트」(24평)에 살던 중 집을 늘리기 위해 지난해 5차례나「아파트」추첨에 신청했으나 모두 실패했었다. 이같이 낙첨의 고배를 잇달아 든 K씨는 매부의 말을 듣고『웬 떡이냐』싶어 깊이 생각지도 않고 달려들었었다.
전직장관 K씨의 경우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비서실장이 K씨의 출가한 딸 이름으로 계약했다. 이 비서실장은 한국도시개발 간부로부터 처음『K씨 이름으로 계약하라』는 권유를 받았으나 K씨가 응하지 않을 것 같아 K씨 딸 앞으로 돌려 계약했다.

<"오히려 손해봤다">
○…이「아파트」를 분양 받았다가 오히려 재산상으로 손해를 봤다고 진술한 사람이 있다. 모회사 간부 K씨는 영동에 대지 75평 짜리 단독주택에 살았으나 현대「그룹」간부가『집 값 상승율이 어디「아파트」만한 게 있느냐』고 추파를 던지는 바람에 살던 집을 지난해 10월 2천5백만 원에 팔고「아파트」(35평)를 계약했다.
그러나 지난봄부터 단독주택 상승율이「아파트」를 앞지르기 시작, 주택 값이 이제 6천만 원에 육박하고 있으나 이「아파트」는 4천만 원을 밑돌고 있는 실정. K씨는 담당검사에게『진짜 피해자는 나다. 이 같은 겹치기 손해를 보았는데 특혜라는 말을 듣게됐으니 억울하다』면서 답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몸조심한 공무원도>
○…현대「그룹」이나 한국도시개발의 특혜권유를 받고 모든 공무원들이 이에 응한 것은 아니었다.
모부처 과장인 H씨는 서울시의 대학동창 K씨를 통해 권유받았으나 불길한 예감이 들어 이를 거절했었다.
H씨는 지방근무 4년만에 서울로 전근, 몸조심을 하던 중이라 선뜻 내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H씨는 또 자신만이 이를 거절한 것이 아니고 계약일보전에 있던 동창생 K씨에게도 이룰 거절토록 종용, K씨도 신청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K씨는 요즘 H씨에게 전화를 걸어『고맙다』고 인사하고있다.
또 검찰의 모부장검사는 분양권유를 받았으나『분양가를 보니 평당 건축비가 35만원으로 실제가격(당시)에 비해 10만∼15만원이나 낮아 뇌물성격을 띠고있다』고 판단, 거절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공무원 봉급으로 65평 짜리를 도저히 유지할 수 없었던 것』도 거절 이유중의 하나였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서울대학의 L학장은 특혜를 주겠다는 교섭을「호통」쳐 뿌리쳤다.
특혜에 응하고 안 응하고는 당사자에게 종이 한 장 차이였으나 결과의 차이는 엄청나다.
【정일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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