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뒤엉킨 유통구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6·13 경제조치」이후 책을 사는 독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출판계는 울상이다. 실제로 보상이 절반이상 줄었다는 서점도 있다. 「인플레」는 출판에 있어서 최대의 적이라고 한다. 일정수입에서 제일 먼저 줄이는 것이 도서 구입비다. 모든 생활용품이 현금으로도 사기 어려운 판에 1∼10개월 뒤 수금을 해야하는 책은 그나마도 안 팔리는 것이 「인플레」때문이라는 풀이다. 지난 한해동안 1만4천3백75종 3천7백81만여부의 책이 나왔다.
한 종류의 도서가 평균 2천6백34부(학습참고서 포함)를 냈고 한권에 l천5백71원씩의 정가가 매겨져 있다. 1천8백18개 출판사가 내놓은 책이다.
이 중에서 50종 이상의 책을 낸 출판사는 50개 사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영세한 출판사들이 건국의 약 3천여개 서점을 통해 독자들에게 책을 공급한다.
「마진」이나 거래조건을 놓고 출판사끼리 경쟁을 하게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결과다.
물론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책은 반드시 서점을 통해서만 사지 않는다. 가정과 직장을 방문하는 월부판매, 단체로 예약하는 예약판매, 우편판매 등 출판사가 독자에게 직접 공급하는 「루트」도 있다.
전집류를 대상으로 한 월부판매는 50여사가 있고 그 판매량이 전체 출판계 판매액의 30%이상을 점유한다는 추계도 있다. 출판사와 서점간의 거래방식에는 대개 5가지 유형이 있다. ①소매서점과 출판사가 직접 거래하는 방식. 이는 한 출판사가 1백여 서점으로부터 2천여 서점까지 거래하는 곳도 있다. ②도매서점에 총판을 맡기는 방식. 전국에 83개의 도매상이 있지만 대부분 소매까지 겸하고 있다. 전국을 「커버」하는 도매상은 없는 실정이다. ③출판사자체가 전국 주요도시에 지사를 직영하는 체제. 10여 출판사가 있으며 학습참고서나 월부출판물까지 취급한다. ④출판협 등 조합은 1백20여 회원사의 위탁판매를 맡고 있다. 이들 회원사는 대부분 「상품관리부실」등 이유로 직거래도 겸하고 있다. ⑤도서유통 협의회는 서적상조합연합회의 49개 지구조합을 공동구매기구로 연결시키면서 지난달 출발했다. 회원사 40여 출판사가 공동발송을 우선 시작했다.
어떻든 1천8백여 출판사가 제 각기의 판매방식을 택하고 있고 여기서 거래조건도 1천8백여 종류가 있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만큼 유통질서는 문란하다.
그래서 출판사에는 더 좋은 책을 만들게 하고 서점에는 적정이윤과 함께 좋은 책을 많이 팔게 하는 이른바 통제기능을 갖는 대형 도매기구의 출현은 양쪽 모두를 위해서 필요해졌다.
현실적으로 출판사는 거래서점이 부도가 나면 따라서 도산을 하고, 같은 『뿌리』나 『올리버·스토리』를 남보다 싼값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 다른 출판사의 책을 원고로 쓰기도 한다. 독자를 의식해서 책값은 못 올리고 원가와 정가와의 적은 「마진」때문에 출고를 제대로 못하는 경우도 있다. 서점은 서점대로 같은 책이 수십 종씩 쏟아지고 저질·불량도서가 나올 때 독자와의 대화가 궁해진다. 거미줄 같은 도서구입 망에 정신을 못 차린다.
일본의 일본서적판매주식회사나 동경 서적판매주식회사 같은 대형 도매기구의 설립이 요청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국 출판협동조합이나 도서유통 협의회와 같은 단순한 공동발송만으로는 이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음은 뻔하다. 단수보다는 복수의 대형 도매기구가 설립되어 자체경쟁으로 좋은 책을 많이 팔겠다고 나설 때 진정한 출판문화육성의 길도 튈 것이란 출판계의 여망이다. 【권순용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