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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압력 분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고위공직자 2백 20여명이 민간 「아파트」 업체에 압력을 가해 특수분양을 받았다는 사실이 정부의 자체조사에서 밝혀졌다.
대체로 그러리란 의혹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이렇게 사실로써 확인되고 보니 공직자들의 도덕적 수준에 대한 환멸을 금할 수 없다.
더구나 그 중에는 상당한 고급공무원과 국회의원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하니 새삼 「상탁하부정」 이란 격언을 실감하게 된다.
이미 3년 전부터 계속되어온 정부의 서정쇄신 운동이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알만도 하다.
부족한 자원의 공평한 배분을 책임 맡은 정책담당자가 이렇게 우선 자기 것부터 떼어놓는 행태는 법적·도덕적으로 지탄받을 일일뿐 아니라 문제의 해결자체를 그르치는 원인이 된다.
정책 담당자가 어떤 문제이든 문제를 국민의 입장에서 공정무사하게 전체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자기불편만 개별적·편파적으로 해결하려 들면 그것은 결코 문제해결의 길이 아니다.
「아파트」문제만 해도 그렇다. 어떤 원인으로든 공급에 비해 수요가 크게 높아 투기현상의 과열로 집을 마련하려는 수많은 국민이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일반적인 어려움을 정책당국자들이 일반국민과 똑같이 인식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들 때 해결의 길은 보다 손쉽게 강구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처럼 공직자들이 개별적으로 자기의 욕구만을 우선 해결하게 되면 문제해결의 질서를 깨뜨릴 뿐 아니라 문제의 심각성 자체를 정책이 인식하지 못하게 되기 쉽다.
아무리 많은 국민이 「아파트」 문제로 인해 고통을 겪어도 스스로 불편을 안 느끼는 정책당국자로선 그것이 남의 일일뿐 자기 일로서 실감을 갖지 못하게 된다.
정책당국자가 문제를 실감하지 못하는데 근본적인 치유책이 과연 나올 수 있겠는가.
이런 점은 비단 「아파트」 문제에서만이 아니다. 승용차만 타고 다니는 고급공무원이 서민의 교통지옥을 실감할 리 없고, 특선을 끌어쓰는 사람이 변두리·고지대의 어려운 급수사정을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설혹 자기의 주택마련을 위한 경우라 하더라도 공직자의 직권을 이용한 「아파트」 특수분양 등의 사익 추구행위는 결단코 용허 되어선 안 된다.
더구나 「프리미엄」을 노린 전매목적일 경우에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우선 투기행위를 막아야할 공직자가 오히려 이에 편승하는 건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비도덕적 행위다. 또 이는 수회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 「아파트」 투기가 성행하고부터 「아파트」 입주권은 현금이나 진배없는 이권이다. 수백만 원에서부터 1천여만원에 이르는 「프리미엄」으로 거래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한 이권을 공무원이 업자로부터 받았다면 그 수수과정이 능동적이건 피동적이건 간에 수회라는 비난을 면할 도리가 있겠는가. 당국의 보다 납득될만한 사후조치가 요구되는 까닭이다.
이러한 유감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일루의 기대를 거는 건 이 사건이 은폐되지 않고 당국의 자체조사를 통해 규명되었다는 점이다.
다만 이왕 전모를 규명한 바에는 여타의 무관한 수많은 공무원의 명예를 위해서도 이들 2백 20명의 명단을 밝히는 게 옮지 않을까.
이번 일을 거울삼아 정부의 서정쇄신노력이 보다 높은 차원에서 근원적으로 전개되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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