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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바지 선거판 뒤흔드는 가족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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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6·4 지방선거 최대 격전지 중 하나인 충북지사 선거가 윤진식(새누리당) 후보 아들 폭행 문제로 얼룩지고 있다. 윤 후보는 1일 “우리 아들이 청주 실내체육관 인근에서 선거운동을 하다 폭행을 당하고 살해 위협까지 받았다”며 새정치민주연합 이시종 후보 측을 청주지검에 고발했다. 그러자 이 후보도 2일 “윤 후보 아들이 사전 동의 없이 우리 측 버스가 수상하다며 사진을 찍어 버스기사와 실랑이가 벌어졌고, 오히려 폭행을 당한 것은 우리 측 선거사무원”이라고 맞고발했다. 윤 후보와 이 후보는 40년 지기다. 동향(충주)에 동문(청주고) 출신으로 지방선거 전까지만 해도 서로를 ‘40년 친구’라며 친밀감을 보였다. 그런 두 후보가 선거를 이틀 앞두고 아들이 관련된 사건으로 우정이 틀어지게 됐다.

 이번 지방선거에선 ‘가족들의 대리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후보의 아들·딸 등 가족이 유독 화제가 되고 있다.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의 아들이 ‘국민 미개’ 발언을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역풍을 맞은 걸 시작으로 지난달 31일엔 고승덕 서울시교육감 후보의 딸 희경씨가 고 후보에 대해 “자식을 돌보지 않는 고 후보는 교육감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역시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나온 조희연 후보 아들이 “조 후보를 지지해달라”며 포털 사이트에 올린 글도 화제가 되면서 선거판을 달궜다. 대구시장에 출마한 새정치연합의 김부겸 후보는 최근 배우인 딸 윤세인씨가 선거운동에 합류하면서 덕을 보고 있다. 정몽준 후보의 부인이나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의 부인처럼 상대 후보 측 공세의 표적이 된 경우도 있다.

 과거 선거에서도 후보의 가족이 화제가 된 적은 있었다. 이회창 전 선진당 대표 아들의 병역 문제, 노무현 전 대통령 장인의 빨치산 전력 논란, 이명박 전 대통령 아들이 서울시 행사에서 히딩크 감독과 사진을 함께 찍은 것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번처럼 후보의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선거판에 뛰어들어 이슈를 만든 적은 없었다.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를 전문가들은 ‘후보 가족의 객체화’에서 찾는다. 과거에는 아버지가 선거에 출마한다고 하면 가족은 아버지가 하는 대로 따라간 반면, 지금은 가족 개개인이 아버지의 출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관건인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소 교수는 “미국의 경우 후보가 가족의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고 반대에 부딪히는 경우도 있다. 또 도움을 받을 때도 후보의 생각이 아닌 가족 개개인의 생각에 따라 이뤄지기 때문에 오히려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일상화되고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 다양화되는 것도 요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결합되면서 후보 가족이 변수가 되고 있다는 얘기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2011년 정치적 파급력을 감안, 딸 말리아와 사샤에게 ‘SNS 금지령’을 내린 적이 있다.

 한국의 전통적인 가족 공동체 문화가 서구식 민주주의와 혼재되면서 생기는 독특한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나영 중앙대(사회학) 교수는 “우리 국민은 공사(公私)를 구분하자고 하면서도 남의 개인사에 관심이 많다”며 “서구에서도 후보의 성적 사생활 등이 이슈가 되지만 우리처럼 과도한 정치적 파장을 일으키진 않는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선거운동을 통해 정책·공약 대결과 후보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서 가족의 행동이 두드러져 보이는 게 근본적 요인이란 지적이다. 후보보다 가족들의 일거수일투족 등 가십거리가 화제가 되는 본말전도 현상을 정치권이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문조(사회학) 고려대 교수는 “ 선진국에선 후보 가족이 이슈가 되긴 하지만 정책과 후보의 능력이 등한시되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며 “ 구의원·시의원 공약도 면밀히 검증하는 정치문화가 형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우·이윤석·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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