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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경험 공유하고 정보 나누며 백혈병 이겨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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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루산우회 회원들이 자신의 치료 경험을 나누고 있다.

지난달 24일 충남의 한 계곡에 위치한 웰빙타운. 330여 명의 만성골수성백혈병(CML) 환자와 가족이 모였다. 루산우회 회원들이다. 산행으로 건강을 증진하고, 정보를 공유해 백혈병을 극복하자는 취지로 결성된 환우회다. 그래서 단체 이름도 백혈병을 이르는 영어 단어(Leukemia)의 첫 글자를 땄다.

 이날은 루산우회가 10주년을 축하하는 희망 캠프가 열린 날이다. 2005년 백혈병 환자 최종섭씨와 백혈병 권위자인 김동욱 교수가 발판을 마련했다. 10주년에 걸맞게 운동회·레크리에이션·타악공연·웃음치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그중 가장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환자들의 경험 공유 시간. 어느 때보다 환자 집중도가 높았다. 환자들이 사례별로 한 명씩 나와 자신의 치료 경험을 얘기하고 귀를 기울였다.

 이날 만난 조옥현(가명·56·여)씨는 성공적인 치료 사례다. 조씨는 백혈병 말기까지 갔다가 정상으로 회복됐다. 그는 8년 전 백혈병 진단 후 표적항암제 글리벡을 복용했다. 그런데 바로 부작용이 생겼다. 홍역·폐렴·혈뇨에 시달렸다. 양쪽 눈이 충혈되고 혀에 구멍이 생겨 말하기도 힘겨웠다. 종기가 생긴 뒤 아물지 않았고, 병원에서 수혈을 받으면서 혈액형이 Rh음성(-)으로 바뀌기까지 했다.

 글리벡은 과거 골수이식을 받아야만 살 수 있던 시절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에 혁신을 가져온 약이다. 정상 세포는 놔두고 암세포만 골라 죽이는 첫 번째 표적항암제다. 워낙 획기적이어서 ‘마법의 탄환(Magic Bullet)’으로 불렸지만, 몸에 맞지 않는 환자는 부작용으로 고통을 겪는다.

 조씨는 “글리벡 부작용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부작용으로 약을 꾸준히 못 먹어) 암세포가 온몸으로 다 번졌다”며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조씨는 김 교수를 만나고 처방약을 타시그나로 바꿨다. 타시그나는 2세대 표적항암제로, 글리벡과 같은 1차 치료제다. 약을 바꾸자 조씨의 상태는 급격히 좋아졌다. 부작용이 없어지고 혈액 내 암 유전자는 0%로 떨어졌다.

 최근 의학계에서는 암 유전자가 전혀 검출되지 않는 상태(MR4.5)가 2~3년간 유지되면 약 복용을 중단하고, 주기적 검사만으로 질환을 관리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상태를 ‘기능적 완치’라고 한다. 이는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의 희망이자 목표다.

 50대 환자인 이석현씨도 비슷한 경우다. 2010년 진단 이후 설사·얼굴부종·근육통의 글리벡 부작용을 앓았다. 근육통이 너무 심해 진통제에 의존해야만 했다. 이씨는 “당시에는 부작용이 너무 심해 사업도 접고 대인관계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도 타시그나로 약을 바꾸자 부작용이 눈에 띄게 줄었다. 근육통과 부종이 없어졌다. 이씨는 “약을 바꾸고 부작용이 없어져 이제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떳떳하다”고 말했다.

 실제 타시그나는 기존 글리벡 부작용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킨 2세대 표적항암제로, 5년 추적연구 결과 암 유전자가 검출되지 않는 상태 도달률이 글리벡의 2배에 가깝다. 골수이식 말고는 딱히 생존할 방법이 없었던 만성골수성백혈병. 표적항암제 신약이 등장하면서 이제 치료의 희망은 생존을 넘어 기능적 완치를 바라보고 있다.

글·사진=류장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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