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아들 나라에 바친 노부부|불우이웃 돕기 28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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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새 아들을 모두 나라에 바친 슬픔을 잊고 28년간 불우이웃을 돕는 일에 보람을 찾았던 심기연(83·강원도원주시 일산동184의18). 조보배(73) 노부부는 올해는 몸이 말을 듣지 않아 현충일 추념식에도 참석치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큰아들 일, 둘째 민, 세째 익씨를 국립묘지에 묻은 노부부는 초년이후 노환으로 묘소를 찾아보지 못하고 올해는 외롭게 집에서 명복만 빌었다.
육사8기생이었던 큰아들 일씨는 육군대위로 태극무공훈장까지 받은 뒤51년 충북음성전투에서 산화, 소령으로 추서됐다.
세째 익씨는 이보다 앞선 50년8월 서울고2년재학중 학도병으로 낙동강전선에 참전, 꽃다운 18세의 나이로 강렬하게 전사했다.
형과 동생을 잃은 둘째 민씨는 당시 서울대 의대에 재학 중이었으나 총격을 받고 어릴 적부터의 꿈이던 의학도를 포기, 경찰전문학교에 들어가 53년 경위로 입관, 민중의 지팡이로 일하다 60년6월 경감으로 과로 순직했다.
슬하의 세 아들을 모두 잃은 심옹은 슬픔과 실의를 느끼기에 앞서 세 아들을 나라에 바쳤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오히려 따른 불우한 사람들을 돕기로 했다.
그 첫 사업이 63년 강원도 명주군 구정면 구정리에 세운 청파자활촌. 전쟁 후 속초에서 운영하던 극장을 처분, 야산18만평을 사들이고 제대군인과 군경유가족25가구를 모아 같이 집을 짓고 논밭을 개간했다.
원주시로 이사한 심옹은 또 64년 자신의 임야9천6백평과 현금50만원을 원주시에 희사, 현충탑을 건립할 수 있도록 했다.
76년 8·14수해 때 유실된 다리복구 기금 50만원을 선뜻 내놓는 등 각종 불우이웃 돕기에 앞장선 심옹은『돈은 별로 없지만 늙은이가 다른데 쓸데가 있습니까? 아들 생각을 해서 불우한 사람들을 돕고 싶을 뿐입니다』고 겸손해했다.
그러나 이제 노환으로 간신히 일어나 앉을 정도가 된 심옹에게는 서울에 따로 사는 둘째 자부와 두 손자가 가끔 방문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5·16민족상과 국민훈장동백장까지 받은 심옹의 집에는 6일 현충일을 맞아 그가 만든 청파자활촌의 용사 5∼6명이 찾아 심옹을 위로하고 있었다. 【원주=조광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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