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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움 모여 800억 육박 … “유족들 좋은 곳에 써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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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7호 08면

경기도 화성시 수원과학대 도서관 2층에 마련된 ‘박지영 추모홀’. 세월호에서 학생들을 구하고 숨진 의사자 박지영(22)씨를 기리기 위해 지난달 30일 조성됐다. 박씨는 2학년 1학기까지 이 학교의 산업경영학과에 다니다 가정 형편 때문에 휴학했다. [뉴시스]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아픔을 함께한다는 뜻을 전하고 싶었다.”

[세월호 참사] 국민성금 사상 최대 규모

명지대 4학년 최모(26)씨는 학교에 마련된 세월호 참사 모금함에 그런 마음을 담아 용돈을 쪼개 넣었다. 이 대학 총학생회는 지난달 21일 전국재해구호협회에 137만7200원을 기부했다. 이렇게 전국에서 답지하는 세월호 성금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모금 목표액 1000만원 이상인 12개의 공식 모금처에 모인 성금 총액은 지난달 30일 783억원을 넘어섰다. 삼성(150억원)·현대차(100억원)·SK(80억원)·LG(70억원) 등 재계 기부가 큰 몫을 차지했다. 이에 따라 이미 재난·사고 모금 규모의 기록을 깼다. 지금까지는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의 모금액이 672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금양호 침몰 땐 천안함 성금서 위로금
세월호 성금 모금은 희생자·실종자 가족과 일부 시민의 반대 속에서 이뤄져 왔다. 김병권 세월호 유가족 대책위원회 대표는 4월 29일 “현재 진행되고 있는 모금은 유가족의 의사와 전혀 무관하다. 동의하지 않은 성금 모금을 당장 중지해 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도 전날 트위터 글을 통해 “모든 종류의 성금과 모금에 반대한다. 처벌과 배상이 먼저다. 책임질 자 탈탈 털고 나서 성금 모금하자”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인터넷에서는 모금 반대 운동도 일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학교에서 학생들의 자발적 동의 과정 없이 모금이 진행돼 논란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희생자·실종자 가족을 돕고 싶다는 국민의 정성은 계속 모였다. 그 사이 가족들의 반대 의사도 누그러졌다. 유경근 유가족 대책위원회 대변인은 31일 “당시(4월 29일)에는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많았다. 가족의 구조를 바라고 있는 입장에서 성금 얘기가 나와 상처를 입은 분들도 있었다. 그래서 다소 격하게 표현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성금이 투명하게 잘 활용됐으면 좋겠고, 우리도 좋은 곳에 사용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표 소장도 “가족들의 뜻이 가장 중요하다. 가족들이 지정하는 곳에서 잘 관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더 이상 반대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성금은 국가에서 제공하는 지원금에 함께 묶여 피해자나 가족에게 전달돼왔다. 대구지하철 사고의 경우 정부가 제공한 특별위로금 1127억원 중 성금이 487억원 포함됐다. 1993년의 서해훼리호 침몰 사건 때는 국민 성금 96억원이 법적 보상금의 재원으로 쓰였다. 이 같은 과거 사례들 때문에 세월호 참사에도 성금이 ‘희석돼’ 사용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모금 반대 인터넷 여론에는 그런 정서가 깔려 있다. 특히 2010년 금양호 침몰 사건이 자주 언급된다. 천안함 실종자 수색에 참여했던 금양호는 항구로 돌아오는 길에 캄보디아 선적의 화물선과 충돌했고, 선원 9명이 숨졌다. 선원 가족들은 천안함 성금에서 희생자 1인당 2억5000만원의 위로금을 받았다. 가족들은 희생자들이 의사자로 지정된 뒤 국가를 상대로 보상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이미 보상을 받았다는 게 법원의 판결이었다.

일부 가족들 “장학재단 만들었으면”
세월호 성금이 어떻게 쓰일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보상 문제를 맡고 있는 해양수산부의 관계자는 “성금 사용은 희생자·실종자 가족들과 의논해 결정할 사안이다. 향후 위원회 형식의 협의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피해자 보상과 관련해 현재 정부는 ‘선 보상 후 구상’의 원칙을 밝혔다. 세월호의 소속사인 청해진해운과 보험사가 할 배상을 정부가 우선 대신한 뒤 회사와 보험사를 상대로 차후에 구상권을 행사해 돈을 받아낸다는 계획이다. 세월호는 한국해운조합 배상책임보험에 가입돼 있어 피해자 1인당 최대 3억5000만원의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 해수부는 선 보상을 위해 ‘세월호 보상 특별법안(가칭)’을 만들고 있다. 해수부 보상기획과 이기열 사무관은 “보상금은 배상금을 선지급하는 형식이니만큼 국민 성금과 별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방침이 유지된다면 세월호 성금은 정부의 보상금과 무관한 순수한 ‘국민 위로금’이 된다.

세월호 성금 중 일부는 추모 사업에 쓰일 가능성이 크다. 대구지하철 사고나 천안함 침몰 때도 그랬다. 일부 세월호 유족은 이미 “보상금으로 장학재단을 만들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이 문제는 유가족들의 명확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 대구지하철 사고의 경우에는 성금 중 110억원으로 추모재단을 설립하기로 했으나 대구시와의 갈등 으로 추모사업 자체가 표류 중이다. 천안함 사건 때는 성금에서 146억원을 떼어 재단을 만들었으나 희생 장병 가족 지원보다 안보교육에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세월호 사건이 몰고온 ‘국가 개조’의 바람에는 성금 모금 제도와 사용에 대한 것도 포함돼 있다. 이번 계기에 혼란스러운 부분을 바로잡자는 뜻이다. 대표적 세월호 성금 모금 기관은 12개다. 그중 대한적십자사와 전국재해구호협회는 중앙정부에, 대한나눔복지회·안산희망재단 등은 지방자치단체에 등록해 활동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주로 재계의 성금을 받고 있다. 등록을 하지 않은 민간 자율 모금 단체도 있다. ‘기부 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예상 모금액 1000만원 미만인 곳은 등록 의무가 없다. 따라서 이들 민간 자율 모금처는 수도 파악되지 않는다. 지난달 30일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세월호 추모 셔츠를 팔면서 기부금 명목으로 돈을 받아 챙기려 한 혐의(사기미수)로 김모(29)씨를 체포했다.

세월호 성금 모금을 일원화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모금가협회 황신애 상임이사는 “모금 단체가 공익성보다 자신들의 입장을 내세우는 경우도 있다. 개별적으로 성금을 걷은 뒤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의 문제도 생겨난다. 기부금이 투명하게 관리되는 체계적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세월호 유가족 대책위원회의 유경근 대변인은 “우리에게 직접 성금을 건네고 싶다고 연락해오는 국민이 많다. 공식 기관에 보내달라고 얘기하지만 ‘믿지 못하겠다’고 한다. 이런 분들의 마음이 상처 받지 않도록 잘 처리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세월호 사건으로 증폭된 정부와 사회기관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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