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 칼럼] 그 많은 GMO, 다 어디 갔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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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7호 30면

최근 30대 여교사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대추토마토도 GMO 아닌가요?” 그는 대추토마토도 대추와 토마토의 유전자를 일부러 섞어 놓은 유전자변형식품(GMO)일 거라 생각해 먹을 때마다 꺼림칙하다고 했다.

“대추토마토는 GMO 방식이 아닌 전통적인 육종(育種) 방식으로 얻은 것”이라고 답하자 곧 이어 “전통 육종과 GMO는 뭐가 다르냐”고 질문을 이었다. 당연한 궁금증인 듯했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이렇다. 플럼코트(Plumcot)란 새 과일은 자두(Plum)와 살구(Apricot)를 교배한 것이다. 우수한 수소의 정액을 암소에 인공 수정시켜 ‘잘 생긴’ 송아지를 얻는 것도 전통 육종의 한 예다.

GMO는 이와 달리 하나의 생물, 예컨대 콩에 콩 아닌 다른 생물의 유전자를 삽입해 ‘장점이 많은 콩’을 얻는 기술이다. 엄밀히 말하면 최첨단 육종기술인 셈이다. 여기서 유전자는 DNA다. 인간이든 콩이든 유전자가 없는 생물은 없다. 당연히 GMO 콩은 물론 일반 콩에도 유전자가 들어 있다.

최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시판 중인 라면ㆍ스파게티 등 93개 면류 제품을 조사한 결과 모든 라벨에 GMO 표시가 없었다고 발표했다. 라면 등에 사용된 대두ㆍ옥수수가 GMO인지 아닌지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발표를 보고 “혹시 GMO 원료를 쓴 라면을 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며 불안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국내 라면ㆍ두부 등에 GMO가 원료로 들어갈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라면ㆍ두부 등에 GMO 원료를 사용하다 적발된다면 현재 소비자의 GMO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고려할 때 그 식품회사는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GMO 프리(free)’ 국가인가. 절대 아니다. 엄청난 양의 GMO 콩, GMO 옥수수 등을 수입하고 있다. 그런데도 마트에서 GMO 표시가 붙은 식품을 보기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이 소비자 입으로 직접 들어가는 두부ㆍ된장ㆍ팝콘 등의 재료로 쓰이지 않고 대부분 식재료인 콩기름ㆍ옥수수기름ㆍ전분당을 만드는 데 사용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GMO 원료를 사용하더라도 DNA·단백질이 남아 있지 않거나 원재료 중 많이 사용한 5순위 안에 포함되지 않으면 표시 의무가 없다. 예를 들어 콩기름은 99.9% 지방이다. 여기엔 GMO 유전자나 단백질이 없다는 이유로 표시 의무를 면제해주는 것이다.

GMO 안전성 논란은 지난 20년간 치열하게 진행됐지만 여전히 모두가 동의하는 판정은 내려지지 않았다. 영국의 존 험프리스는 저서인 『위험한 식탁(The great food gamble)』에서 “GMO 지지자와 반대자 사이의 논쟁은 늘 공전”이라고 했다.

그 대안으로 나온 것이 GMO 표시 제도인데, 이 역시 양날의 칼이다.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장한다는 장점과 상당한 비용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GMO 콩ㆍ옥수수가 아닌 일반 콩ㆍ옥수수를 수입하려면 엄청난 추가 비용이 발생하고 이 부담은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옥수수ㆍ콩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에선 GMO 표시제가 식품 가격의 상승으로 직결될 수 있다.

저울의 한쪽에 GMO 표시를 확대했을 때의 이익(소비자의 알 권리 보장)과, 다른 한쪽에 식품 가격 상승이라는 손해를 올려놓는다고 생각해 보자. 과연 저울의 바늘은 어느 쪽으로 기울 것인가. 정책 당국자는 물론이고 소비자들도 이를 잘 따져 합리적인 결론을 찾아야 한다.

한편 그동안 GMO의 ‘M(modified)’이란 철자는 각자의 입맛에 따라 재조합ㆍ변형ㆍ조작 등으로 달리 해석돼 왔다.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종전의 ‘재조합’이란 용어를 버리고 우리말 표기를 ‘유전자변형식품’으로 통일한 것은 잘한 일이다. 용어 자체에 중립성을 담도록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이를 계기로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득이 되는 건전한 논의가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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