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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하면 정치적 흥정거리 PL480|김동조씨 증언의 협박무기가 될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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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 공법(PL)480이 새삼스레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미 의회가 김동조 전주미대사의소환을 놓고 비 군사원조의 중단이라는 무기로 위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 군사원조라면 지금 PL480에 의한 미 잉여 농산물의 유상원조와 평화봉사단자금 3백만「달러」정도다.
그러나 평화봉사단 자금은 규모가 얼마 안되므로 문제가 될 것이 없고 따라서 미 의회가 위협을 실행에 옮긴다면 PL480이 문제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PL480의 정체를 벗겨 본다면 이 같은 미 의회의 위협이 별로 실감 있게 전달되지 않는다.
PL480에 의한 식량원조라는 것이 사실은 미국에서 남아도는 농산물을 팔아먹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 남은「원조」>
물건을 팔아야할 사람이 물건을 안 팔겠다는 것을 위협수단으로 쓰는 격이라고 하면 좀 지나친 얘기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피해는 한쪽만 보게되는 것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손님은 왕」이라는 상술을 철저히 실천하기로 소문난 미국인들이 잠시 자신의 처지를 잊은 듯한 느낌마저 든다.
PL480의 본명은「미국농산물 교역진흥 및 대외 원조 법」이라는 긴 이름이다.
속칭 PL480으로 불리는 이 법이 제정된 것은 54년도. 남아도는 농수산물의 외국에서의 소비를 늘리고 저개발국의 농업개발을 지원하며 미국의 대외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다각적인 목적아래 의회를 통과한 것이 이 법이다.
처음에는 무상원조로 시작했으나 68년부터는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었던지 유상으로 전환하기 시작, 지금은 모두 유상으로 바뀌었다.
지원조건은 10년 거치·31년 상환이며 거치 기간 중 연2%, 상환기간 중 3%의 이자를 물도록 되어있다.
현재 PL480에 의한 식량원조를 받고있는 나라는 우리 나라를 비롯, 「이집트」「방글라데시」「인도네시아」등 30여개국.
우리 나라는 55년부터 이 법에 의한 식량원조를 받기 시작, 그 동안 모두 15억6천4백93만「달러」어치의 각종 농산물을 지원 받았다..
대종품목은 소맥·원면·옥수수·쌀 등이고 이밖에 대맥·우지·담배·수수·돈육 등 미국에서 남아도는 농산물은 거의 다 망라되어 있다.
그 동안 들여온 물량은 소맥이 유 무상 합해 5억8천5백만「달러」어치로 가장 많고 원면이 4억「달러」, 현미가 3억9천4백만「달러」의 순서. 나머지 품목은 대부분 1억「달러」미만이다.
PL480의 정체는 매년 그해 그해의 도입물량과 지원조건을 정하는 양국간의 협정 내용을 보면 단박 드러난다.

<연 3% 이자도>
우선 잉여농산물을 장기 저리로 지원하는 대신에 일정량의 소맥 혹은 원면 등 농산물을 우리가 보유하는 외환(KFX)으로 수입해 줄 것을 요구한다.
77년의 경우 41만t의 소맥(3천3백80만「달러」)을 증여하는 조건으로 1백31만1천t의 소맥을 우리 자금으로 사가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물론 농산물의 국제교역을 증진시킨다는 대의명분상 1백% 미국의 농산물만을 사라는 것은 아니고 다른 나라의 농산물 도입을 부록으로 붙이기도 하지만 물량 면에서 비교가 안될 정도로 적다.
또 한가지는 PL480에 의한 지원이「특혜조의 지원」이라는 것을 전「매스컴」을 통해 한국국민에게 널리 홍보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
장사를 하되 장사가 아닌 것처럼 하겠다는 데서 미국인들의 속 깊은 상술을 엿볼 수 있다.
지난해에는 인권문제를 협정내용에 포함시키자는 제의를 해오기도 했다.

<30개국서 수혜>
이 외에도 도입 농산물의 판매대전 중 5%는 착수금으로 선급 해야하고 도입물량의 20∼35%는 원화로 조기 상환토록 하여 AID(국제개발 처)등 주한 미 기관의 경비로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온갖 생색과 까다로운 조건아래 도입되는 잉여농산물의 겁과는 한마디로 단언키 어렵다.
6·25의 상처를 치유하고 오늘의 높은 성장을 이룩할 수 있게 된데는 PL480의 힘이 적지 않았다. 특히 55년부터 70년대 초까지 들어온 무상지원은 초토화된 이 나라와 기아에 허덕이는 국민들을 구호하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값싼 이농물의 대량수입으로 국내 농업은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61년까지만 해도 33.9%의 자급 율을 유지하던 소맥이 지금은 95%를 해외도입에 의존하고있으며 옥수수도 61년의 24.6%에서 지금은 6.2%로 자급도가 떨어졌다.
장기간 미국의 잉여농산물에 의존한 결과는 농산물공급의 대미 예속화를 가져왔고 우리의 농업기반은 그만큼 취약해졌다고 보아야한다.
미 의회의 최근 움직임은 이 같은 예속화를 인식한데서 나온 고자세로 보아야할 것 같다.
그러나 우리도 과거 무상원조를 받던 때와는 사정이 달라졌다. 수출이 1백억「달러」를 넘어섰고 외환보유고가 40억「달러」를 넘어 수입개방정책이 점차 확대되고있다.
말하자면 PL480에 목줄을 맬 정도는 넘어섰다는 얘기다.
이런 싯점에서 PL480을 개발도상국을 위협하는 수단으로 한다는 것은 어딘지 점잖지 못하고 대국의 금도를 잃은 듯한 처사로 보여 미국을 아끼는 입장에서 안타깝기조차 하다. 【신성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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