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독불장군식 대북정책 땐 한국이 끌려가는 상황 올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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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정권이 29일 내놓은 북·일 회담 ‘깜짝 쇼’는 주변국을 철저히 배제한 가운데 이뤄졌다. ‘독불장군식 외교’를 대북 정책에도 적용하겠다는 신호탄이나 다름없다. 외교부 관계자는 30일 “오후 도쿄에서 북·일회담 결과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자세한 설명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 해결 협의를 계기로 한·일 국장급 대화 채널이 정례적으로 가동되고 있는 만큼 필요시 우리가 관련한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나마 한·미는 발표 직전 외교채널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발표문은 받았지만 중국에는 북한과 일본 어느 쪽도 사전에 발표 사실을 통보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북·일 간의 본격적 협의는 이제부터 시작인 만큼 대북제재 해제 효과 등을 논하기는 이르다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북한으로서는 가장 큰 것이 북·일 물품 교역 금지 제재와 만경봉호(원산~니가타를 오가는 여객선) 등 선박 입항 금지 제재인데 이 부분이 빠져 있다”며 “일본 쪽 협의 결과 발표 문안에도 ‘최종적으로 일본이 독자적으로 취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조치를 해제할 의사를 표명함’이라고 다소 애매하게 표현돼 있다”고 설명했다. 아직 난제가 산적해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부로서는 일본이 대북 문제에 주도권을 쥐고 한국이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남북관계 경색 국면에서 발생한 ‘일본 변수’에 치밀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특히 북한과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전향적 합의’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한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북한은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 피해 및 강제징용 배상 등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여왔다. 국교 정상화 논의가 순항하고 북한이 합당한 피해 배상을 요구했을 때 일본이 1965년 한·일협정보다 더 나아간 수준의 책임 인정과 배상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될 경우 과거사 문제를 지렛대로 대일 관계에서 공세 국면을 이끌어온 한국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황준국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다음 달 1~3일 방미해 글린 데이비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만나는 자리에서도 일본의 독자 대북제재 해제가 6자회담에 미칠 영향에 대한 의견이 오갈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에는 워싱턴에서 한·미·일 6자회담 수석대표가 머리를 맞댔지만, 이번에는 한·미 회담만 이뤄질 전망이다.

 이화여대 국제학부 박인휘 교수는 “고립된 북한으로서는 불안정한 동북아 정세를 활용하는 외교정책으로 돌파구를 마련하려 할 것이고, ‘일본 카드’를 쓰는 것 역시 충분히 예상 가능했는데 정부가 충분히 대비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 북한발 ‘핵 도미노’ 경고=박근혜 대통령은 30일 발행된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4차 핵실험이 동북아 국가들에 핵무장 명분을 주는 핵 도미노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추가 핵실험은 북한이 사실상 돌아올 수 없는 길로 가는 것”이라며 교착상태에 있는 6자회담의 종료 가능성도 시사했다.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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