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한 여성」등장시킨 영화제작「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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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때「붐」을 이루던 고교생 영화가 퇴조의 기미를 보이는 대신 특수한 직업, 특이한 환경에 있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멜러」영화가 외화를 압도하는 현상을 보여 주목을 끌고있다.「호스티스」를 주인공으로 한 『O양의 아파트』(하장호 감독, 김자옥·한진희 주연)와 가정부를 주인공으로 한『아스팔트 위의 여자』(문여송 감독, 김영란·신성일 주연)가 당초예상을 깨고 수십만 관객을 동원하면서「롱·런」했는가 하면 시골에서 상경하여 갖가지 밑바닥직업을 체험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미스양의 모험』(김응천 감독, 정희·신성일 주연)이 곧 개봉될 예정이고 이와 비슷한 성격의 영화들이 약 20편이나 제작 중에 있다.
특히 이러한「붐」을 타고 『별들의 고향』 『겨울 여자』 『O양의「아파트」』 등 「히트」했던 영화들의 속편제작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어 조만간 극장가는 여성취향의「멜러」물로 압도될 전망이다.
여성취향의 「멜러」물이「붐」을 이룬 것은 처음이 아니지만 종래「봄」을 이뤘던 영화가60년대 후반기의『미워도 다시 한번』처럼 직업과 관계없는「여성의 운명적 불행」같은 것이 주제인데 반해 최근의 영화들은 직업이 부각되고 있다는 점이 특징. 현재 제작중인 영화들도「호스티스」(나는77번 아가씨),여류화가(화조),가수 지망생(당신만을 사랑해)등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거나 『현지처』 『씨받이 부인』 『과부』 등 특수한 환경의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한 것들이 많다.
관객을 외화에 빼앗기고 있는 국산영화계로서는 이러한 영화들이「히트」하는 것을「국산영화의 성공」으로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영화 예술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상당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 영화평론가 안병섭씨(서울예전교수)는 『이러한 영화들에 관객이 쏠리는 것은 예술적인 측면과는 전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안 교수는『성 「모럴」이 붕괴돼 가는 시대상에 영합하려는 제작자의 의도는 마땅히 비판받아야 한다』면서 『그러한 소재가 꼭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예술성을 무시하고 이야기만 전달하려는 자세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극장측의 얘기로는 이들 영화의 관객들은 20대 여성이 압도적이라는 것. 젊은 세대의 의식구조가 성「모럴」의 붕괴에 공감을 느끼는 것은 시대와 사회의 변모에 따른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특별히 여성관객이 많이 몰리는 까닭은 무엇인가.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사회학자 이봉현 교수(이대)는 이것은「대리욕구 충족」의 현상으로 보고 있다.
내재적인 도덕률과의 갈등 때문에 성「모럴」의 붕괴에 공감을 느끼면서도 실행하지 못하고있는 많은 여성들이 그러한 영화를 관람함으로써 만족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또 영화 속의 주인공과 똑같은 경험을 했거나 현재 똑같은 입장에 있는 여성들도 그런 영화를 관람함으로써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어쨌든 이와 같은 여성취향의「멜러」영화「붐」은 영화 예술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비판받아야할 소지가 없지 않은 것 같다.
국산영화가 활기를 찾는 방법이 꼭 그런 영화를 많이 만드는 길밖에 없겠느냐 하는 것도생각해 봐야겠지만 주인공이 죽어버려 이야기 자체가 끝났는데도 억지를 써서 속편을 만들어 내는 풍토는 한국영화를 낙후케 하는 직접적 원인이 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영화인들이 양식을 되찾아 관객을 의식하기에 앞서 예술적인 차원에서의 영화를 의식해야 하며 만들어진 영화가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 신중한 자기성찰을 갖는 일이다.【정규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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