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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조직 개편, 누구 맘대로 끼리끼리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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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성시윤
성시윤 기자 중앙일보 기자
성시윤
사회부문 기자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29일 입법예고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에서 개편 구상이 처음 나온 지 정확히 10일 만이다. 대통령으로선 국민의 질타를 받는 해경·안전행정부·해양수산부에 ‘메스’를 대지 않고 넘어가기 부담스러웠을 게다.

  정부조직 개편은 외부 환경이 달라지거나, 정책 우선순위가 바뀌거나, 정부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처방이 필요할 때 일어난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국민 안전은 모든 이가 공감하는 ‘0순위’ 정책이 됐다. 우리 정부에 구조적 문제가 있음도 명백해졌다. 정부조직 개편의 필요성은 갖춰졌다.

 정부조직을 어떤 방향으로 개편할 것이냐를 놓고 공론의 장이 열릴 만하다. 그런데 장이 채 열리기도 전에 닫혀버리는 분위기다. 대통령의 구상이 정책토론회 한 번 없이 입법예고돼 버렸다.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한국 사회는 정부 수립 당시를 제외하곤 정부조직 개편에 대해 제대로 토론해본 경험이 없다. 정부 수립 이후 50차례 넘게 정부조직이 바뀌었으니 ‘연례행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마다 취임하면서 정부조직을 바꿨고 일부는 임기 중에 또 바꿨다. 야당도 정부 개편에 대해 별로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나중에 자신들이 집권했을 때 또 바꿀 생각이기 때문이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삼아 국민 안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부조직을 바꾸는 것에 공감한다. 여야는 물론 사회 각계 목소리를 담아 정부조직을 바꿨으면 한다. 그 조직이 안정적으로 유지돼 국민 안전을 정말 잘 지켜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논의 과정은 실망스럽다. 우선 개편안이 구체적으로 어떤 논의를 거쳤는지에 대한 설명을 찾기 어렵다. 담화문에 없던 ‘교육부총리 신설’은 어떻게 뒤늦게 나왔는가. 안전행정부에서 신설 부처로 넘기겠다고 대통령이 공언했던 조직기능은 왜 안행부에 계속 남는가. 대통령과 관료 누구도 이에 대해 투명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7000자 분량의 대통령 담화문을 다시 꼼꼼히 읽어봤다. 개편안 논의 에 대한 언급은 두 번 나온다. ‘고심 끝에 해경을 해체하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많은 국민과 관계자들의 의견을 듣고 수렴해서 ’다. 추상적인 언급이라 어떻게 논의했다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잘 모르겠다. 이러니 정부조직 개편의 주무 부처인 안행부의 설명 역시 ‘대국민 담화 후속조치로서 정부조직을 개편한다’는 추상적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지금부터라도 정부 개편을 원점에서 논의해야 한다. ‘끼리끼리 문화’ ‘폐쇄적인 조직문화’ 속에서 정부조직 개편을 일사불란하게 처리할 것인가. 박근혜 정부는 집권 초기의 경험을 떠올려야 한다. ‘국민 안전을 최우선에 두겠다’며 이전의 행정안전부 이름을 현재의 안전행정부로 바꾸지 않았었나. 당시 국민들은 ‘단어 순서만 바뀌면 안전이 확보될까’ 궁금했었다.

 기왕에 정부조직을 개편할 생각이라면 이번만큼은 성실하게 과정을 밟아야 한다. 정책은 내용 못지않게 과정이 중요하다.

성시윤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