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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 거래나 좀 되면 좋겠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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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서울 잠실에서 30년째 부동산 중개소를 운영 중인 김찬경 사장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김씨는 “1년에도 몇 번씩 부동산 정책이 바뀌는 건 대단히 잘못된 처사”라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아, 부동산! 정말 힘들어. 내가 부동산 중개를 30년 했는데 요즘 같이 힘든 때도 없네. 말 그대로 시장이 날개 없는 추락을 한 지 벌써 6년째 아냐. 2008년 하반기(글로벌 금융위기)부터 냉각기가 시작됐으니까. 내리막길(집값 하락)은 숨도 안 쉬고 뛰어 내려가더니 당최 올라올 생각을 안 하네.

 내가 공인중개사시험 1회(1985년) 합격자야. 난 사실 판사가 꿈이었거든. 낮에는 세무서 다니고 밤에 공부했는데 너무 힘든 거야. 그때 광고를 봤어. 일단 따놓으면 자격증만 빌려줘도 월 30만원을 받을 수 있다는 거지. 이 돈으로 생활하며 밤낮으로 고시 공부하면 되겠구나 했지. 합격 통지를 받았는데 웬걸, 그해 6만4000명이 합격한 거야. 허탈해하다가 ‘기왕 딴 자격증 한번 부딪쳐 보자’ 하고 무작정 부동산 중개업을 시작했네.

 정말 열심히 했어. 매일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일만 했어. 1년에 설 연휴 이틀, 추석 연휴 이틀 딱 4일 쉬었지. 부동산학·경영학·법학 공부도 열심히 했어. 그저 그런 중개업자가 되지 않으려면 전문성을 갖추는 길밖에 없으니까.

 사실 부동산 중개업은 전문직종이야. 다양한 지식이 있어야 하거든. 자산관리사·펀드투자상담사처럼 부동산 관련 전문 지식을 끊임없이 공부해야 해. 지난해만 봐도 그래. 부동산 대책이 몇 번이 나왔느냐고. 1년에도 몇 번씩 관련 법이 달라지는걸. 이걸 바로바로 꿰고 있어야 하는 거야. 그런데 이상하게 우리나라에서는 부동산 중개업을 무시해. 처음 시작했을 때도 그게 힘들더라고. 심지어 가족도 그랬으니…. 아버지는 내 전화도 안 받았어. 아버지 지인들이 이러는 거지. ‘네 아들 정신병원 데려가봐라. 그 좋은 직장(세무서) 때려치우고 중개업자가 웬 말이냐’ ‘판사 된다고 서울 간 놈이 고작 부동산이냐’….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부동산 대책이 1년에 몇 번씩 나오는 건 대단히 잘못된 거야. 충분한 현장 조사를 거쳐서 애초에 제대로 된 방안을 내놓고 뚝심 있게 추진해야지. 이거 찔끔 바꿔보고 약발 안 먹히니 저거 찔끔 바꿔보고…. 또 내놓고 또 내놓고 그러는 거 아냐. 줏대도 없어. 부동산 경기 부양한다고 각종 규제 풀고 이런저런 방안 내놓는 거 좋은데 일관성이 있어야 믿고 따르지.

 최근 상황만 봐도 그래. 사실 진짜 주택 거래가 늘어나려면 ‘돈 있는 사람’이 집을 사야 하거든. 서민들이야 평생 집 한 채 장만하는 게 다잖아. 자산가들이 집을 사들여서 세 놓고 해야 매매는 물론이고 임대시장도 순환이 되는 거야. 정부도 이걸 알아. 그러니까 주택임대사업 기준 완화하고 세금 깎아주고 그런 거 아냐. 그런데 난데없이 몇 달 만에 전·월세 임대 과세하겠다고 나서니…. 주택임대사업하라고 할 때는 언제고 찬물 끼얹는 꼴밖에 더 돼? 물론 주택임대시장 선진화를 위해 필요한 방안이야. 하지만 모든 일에는 우선순위라는 게 있잖아. 다 죽어가는 애(주택시장) 먼저 살리고 봐야지.

 이전처럼 투기가 나타날까봐 겁내는 거 같은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 집값이 급등하려면 여러 가지 경제적인 요인이 어우러져야 해. 그런데 저성장 시대잖아. 집값만 급등할 요인이 뭐가 있겠어.

 이전 같은 호황은 오기 어렵고 바라지도 않아. 공인중개사에 대한 오해 중의 하나가 집값이 오를수록 좋은 줄 알더라고. 아니야. 집값이 너무 올라도 거래가 안 되고 너무 떨어져도 거래가 안 되거든. 그냥 거래나 좀 되면 좋겠어. 전국에 공인중개사가 몇 명인 줄 알아? 25만명이야. 이 중에 중개업소 운영 중인 사람들은 8만 명 정도 돼. 경쟁자는 많고 먹거리(거래)는 없고….

 내가 1985년에 서울 잠실에 처음 발을 디뎠거든. 그땐 서울 강동구 송파동이었지. 지금은 송파구 잠실동이지만. 당시는 5층짜리 아파트뿐이었어. 뽕밭이던 잠실에 대단지 주공·시영 아파트가 쫙 들어서 있었지. 이 아파트들이 2000년대 들어서면서 재건축 바람을 타고 로또 아파트가 된 거야. 연탄 아파트, 서민 아파트의 대명사였는데 단숨에 강남권 최고급 아파트로 변신했어. 몸값이 3.3㎡당 3000만~4000만원으로 치솟았지. 전셋값도 109㎡(공급면적)형이 7억5000만원씩 했어. 그래도 입주하려는 사람이 줄을 섰지. 공인중개사에겐 ‘물 반, 고기 반’으로 보인 거지. 잠실 엘스(옛 주공1단지)에만 부동산 중개업소 58곳이 들어섰어. 그런데 오래가지는 않았지. 과당경쟁으로 4~5년 만에 30%가 문 닫고 30%가 사실상 휴업했으니까.

 내가 올해 57세(1957년생)야. 산전수전 겪으며 인생의 절반인 30년을 부동산 중개를 했는데 요즘 참 힘들어. 어떤 일이든 같은 일을 30년씩 하면 나름의 혜안이 생기거든. 흐름도 알게 되고 대충 어떻게 되겠구나 느낌이 있어. 그런데 요즘은 한 치 앞이 안 보이네. 이렇게 치열한 생존 경쟁을 이겨내고 살아남을 수 있을지 한숨이 나. 그래도 다시 한번 힘을 내봐야 하지 않겠어?

정리=최현주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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