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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의 조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친정어머님께 『잘 살기 전에는 다시 오지 않겠어요』라고 선언하고 돌아선 지 두달만에 여동생을 불러내어 만났다. 그간 친정엔 복잡한 문제가 있어서 그 해결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대학에 재학중인 여동생은 조용한 다방에서 마주앉자 불쑥 한다는 소리가『난 언니 때문에 괜스레 주목대상이 되고있어.』은근히 나를 원망하는 듯한 의미였다.
그도 그럴 것이 기반 없고 직장도 없고 이상은 큰데 현실감이 약한 그이를 만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나 오빠들로부터 『너만은 언니 닮지 말아라!』『연애를 해도 고생감은 면할 배우자라야 한다』『너는 언니 같은 결혼은 용납 못해!』라는 등 반 위협적인 충고를 끊임없이 듣고있을 테니까 짜증이 날만도 하겠지.
나의 입장이 지금으로선 변명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미소로 듣고 넘겼지만 무척 가슴이 아팠다.
돈만이 전부가 아니다. 애정과 차원 높은 정신세계만 가지고 있다면 모든 역경은 극복할 수가 있다고 믿었던 나였지만, 불과 결혼 3년만에 나의 그런 사고방식이 죄 없는 주위사람에게 정신적인 폐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되니 한없이 처량한 기분이었다.
나는 지금도 뛰어보고 싶고 뻗어보고 싶은 욕구는 학창시절과 다름없는데, 다만 애와 남편 때문에 제한을 받는다고 느끼고만 살아왔다. 또 내 인생이 한남자의 역량에만 좌우되어 평가되어야 하는 것이 늘 못마땅해 왔을 뿐이다.
그 날 여동생이 언니의 빈궁한 생활상이 염려가 되어 분발을 촉진해서 한말에 나는 자신이 아직까지 지나치게 소극적이었음을 부끄럽게 느꼈다.
대학까지 나왔으면 자신이 스스로 일거리를 찾아만들어야지 능력에 맞는 일이 주어지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어느 교수의 말을 동생은 들려줬던 것이다.
『그래! 이제부턴 우유배달이라도 할게 걱정하지마!』동생을 안심시켰다. 귀가 길에 나는 3년 전 집념으로 힘든 반대결혼을 이룬 것처럼 내 힘으로 나의 장래를 개척해야겠다고 굳게 맘먹는다. <강계원(서울 마포구 서교동 461의2호)<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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