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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구상과 추상이라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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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4면

윤=구상이니 추상이니 하는 말은 그동안 개념의 혼란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추상이란 60년대 초에 비로소 정착됐다고 보겠는데 이미 남이 해놓은 것을 모호하게 받아들이는데 불과하죠. 뿐더러 구상과 추상으로 화단이 양분되는 실정에까지 이르렀는데 이젠 그 개념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읍니다.
박=그렇지요. 지난 20여년간 우리 화단은 추상의 선풍이 지배하다시피 하였는데 그럼 그 양식과 그 실험정신을 정말 알고서 한 작가가 얼마나 있겠는가 의문입니다. 서구에서 추상양식이 등장한 것은 종래의 소박한 표현양식으론 그들의 현실을 원만하게 표현하기 부족하므로 보다 현실을 뜨겁게 긍정하고 체험하려는 과정에서 얻어진 미술입니다. 물론 그것이 그들의 전부는 아닌데 우리는 성급하게 이것이냐 저것이냐부터 우선 택일하려는 폐단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자기모순과 자기혼란에 빠진게 사실입니다.
윤=이른바 추상이라는 조형 행위에는 두 가지가 있읍니다. 사실적 충동에서 비롯된 것과 추상적 충동에 의해 이루어지는게 있읍니다. 그러나 사실적 충동이든 추상적 충동이든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림은 추상적으로 축출되는 상이라 할 수 있읍니다. 흔히 추상을「추상파」「추상주의」니 하여「이데올로기」처럼 생각하지만 결코 그런게 아니며, 오히려 색·선·「마티에르」와 같이 그림 그리는 요소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추상을 파와 주의로 통념화해 더욱 혼란을 빚는 것 같습니다.
구상이란 말도 모호하긴 마찬가지죠. 1차 대전 후「앵포르멜」이 성행할 때 그 저항세력으로 등장한「피그라티브」운동을 직역한 용어이거든요. 그걸 우리는 표현대장의 모습이 알아보게 나타난 것이면 구상이다. 뭔지 모르겠다든 가 어렵게 나타난 것이면 모두, 추상이다-이런 규정은 너무 맹목적인 생각입니다.
박=다른 말로 표현하면 구 상식 양이란 발언의 미술이 되겠습니다. 역사·사회, 혹은 자기존재에 대한 선명한 발언이 구상이라면 그런 발언을 위해 외면적 발언을 거부한 양식이 추상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서구사회에서 그들의 역사와 함께 합리적으로 변천돼 온 것을 무턱대고 받아들임으로써 오해가 생겼습니다.
연로층에선 1930년대 전후에 일본 가서 접한 것이 인상파 이후의 것이니까 서양 미술이라면 그것만 정수처럼 여기고 또 근자엔·추상이 마치 목적인 것처럼 회화의 종착역처럼 단정하고 있읍니다.
윤=구상이든 추상이든 문제는「리얼리티」가 있어야겠습니다. 흔히「리얼리티」라 하면 사회적 고발적인 것, 문학적인 것, 설화적인 것…이런 것으로 착각하는 느낌인데 보다 절실하고 뼈를 깎는 아픔이 있어야겠읍니다.
구상하면 사과와 신라토기와「파이프」를 놓는다든가 학과사슴을 관념적 관습적으로 그려서도 안되겠고 추상이라 해서 직직 갈기면 된다는 식의 사고는 버려져야겠습니다.
왜 그게 거기 있느냐 하는 소재의 필연성이 있어야겠다는 것입니다.
박=그렇습니다. 서구미술사를 보면 그들 문명이 저질러 놓은 상황이나 문제를 주제로 하여 무엇이 모순이며 바람직한 세계가 어디 있는가를 부단히 추구했고 되풀이돼 왔읍니다. 추상을 해도 분명히 내면의식의 발언이 있다 하겠읍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한국미술, 특히 양식초기의 그것들은 뼈저리게 절감된 산물이 아니라, 즐김으로 그림을 그린 무의미한 정물화 시대였습니다. 그런 발언 양식으로 보면 우리 나라엔 아직도 참다운 구상이 꽃피지 않았습니다.
윤=구상이냐 추장이냐 하는 형식문제는 그리 중요치 않습니다. 참다운 작가라면 구상이나 추상이 문제가 아니라 저변의 의식이 중요합니다.
추상을 아니하면 뒤떨어진다든가 제도나 고객의 눈치도 살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자기의 체질과 개성은 구상인데 추상이 앞서가는 듯하니까 추상을 한다면 그건 자기기만입니다. 또 추상은 자기 멋대로 만드는 그림이라고 처음부터 거부하는 자세도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60년대의 외국 잡지 모사시대도 지났고 7O년대 들어 우리 것이 무엇이냐 하는 자각기에 들어섰습니다. 지난 10년 간 추상이 활발하다보니 치우쳐 버렸는데 당연히 구상도 개발되어 균형 있게 발전되어야 합니다.
박=언제나 획일적인 것이란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지요. 요는 우리는 새세대다 신인이다 하면 30미만으로 규정하는게 상례인데 60세에도 신인으로 나올 수 있는 기풍이 중요합니다. 자신 없고 사명감 없으면 조로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중앙미술대전에선 의식이 맑고 의욕에 참 신인들이 폭넓게 발굴되었으면 하는 기대가 큽니다.

<대담>
윤명노<서울대 미대조교수·화가> 박용숙<동덕여대강사· 미술 평론가>

<차례>
①한국미술 60년의 반성 ②무엇이「한국적」인가 ③추상과 구상이라는 것 ④민전이 지녀야 할 문제 의식 ⑤내일을 위한 발굴·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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