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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 입국의「심벌」포철 열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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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공업 입국의 상징적인 존재인 포항종합제철(대표 박태준)이 4월1일 창립10주년을 맞았다.
IBRD(세계은행)와 IECOK(대한경제협력체)가 종합제철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을 부인하고 KISA(대한국제 제철차관단)가 해체되는 등 한국의 제철공업은 당초부터 어려움이 많았다.
그런 난관 속에서 정부가 대일 청구권 자금을 공장건설에 투입키로 결정함에 따라 포철은 70년4월 비로소 1백3만t(조강 기준)의 1기 설비에 착공했으며 금년말로 5백50만t의 생산체제를 갖출 만큼 급성장을 계속했다.
그간 포철에는 내외자 1조5백50억원이 투입됐으며 81년까지는 8백50만t을 목표로 1조7천2백50억원의 투입되어 단위 제철소로는 세계 12위의 위치를 정하게 된다.
73년부터「산업의 쌀」인 철강을 생산키 시작한 포철은 그간 총6백69만t의 각종 철강재를 만들어 이중 4백12만t을 국내 공급함으로써 철강수요의 자급수요 57%까지 끌어올렸다. 일관제철로 건설공기 면에서 최단기라는, 또 건설단가와 제품생산가격의 최저라는 세계기록을 바탕으로 포철은 가동 초년도인 73년부터 흑자경영을 이룩하는 기록을 추가했으며 확장사업에 필요한 소요내자의 66%에 해당하는 2천8백48억원을 자체 조달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소중한 성과는 제철공업에 대한 국내 기술축적.
1기 설비 건설당시 6백20만「달러」의 기술용역비를 일본에 지급했던 것이 8백50만t으로의 4기 확장공사부터는 1백%단독 설계로 건설에 임할 수 있게 됐다. 포철은 그간 1천4백명의 직원을 해외 연수시켰고 기술용역회사를 별도 설립, 2백 여명의「엔지니어」와 25만장의 설계도면을 확보해두고 있다. 기술의 자립화에 따라 제철설비의 국산화도 제고되어 4기 설비의 국산화 비율은 35%에 이르게 됐다. 【이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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