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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 중독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담양 고은석씨 일가족의 전신마비증세가 수은중독으로 밝혀짐으로써 우리 나라에서도 농약공해가 이제 심각한 현실문제로 표면화됐다.
본사가 지난25일 관계전문가로 구성된 조사반을 현지에 급파, 고씨 일가족중 증상이 경미한 2남 영철군(20)과 3남 영삼군(16)형제의 체내 수은함량을 측정한 결과, 이들의 혈중 수은농도는 정상인에 비해 무려 14배내지 30에 이른 것으로 드러났다.
농약의 남용으로 빚어지는 중금속공해는 토양과 식품, 자연생태계의 오염에 그치지 않고 마침내 인명자체를 직접 위협하기에 이른 것임을 똑바로 인식해야 하겠다.
유기수은제 공해의 가공성은 결코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일본의 유명한「미나마따」(수오)병소동을 구태여 들출 필요도 없다.
국내에서도 유기수은제 농약의 잔류독성에 의해 농우등 가축이 폐사하고, 희귀한 천연동물이 수난을 겪는가 하면, 꽃가루를 옮기는 익충까지 피해를 보아 과실나무의 착과율이 해마다 낮아지는등 말기적 증상이 나타나 경종이 올려진지는 이미 오래다.
이처럼 눈앞에 닥친 적신호를 보아왔고 남의 나라가 범한 쓰라린 참변을 뻔히 알면서도 끝내 그 전철을 되풀이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렀다는데 대해 우리 모두가 깊이 반성해야 할 줄 안다.
농약은 농작물의 병충해를 막아 식량문제해결에 큰 공헌을 한 문명의 소산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은제인 BHC·「트린」제등 광범한 핵과가 있는 농약은 그 유독성분의 잔류기가 길어 미량이라도 계속흡수될 때에는 집적으로 인한 피해를 낳기 마련이다.
인체나 토양중에 흡수된 농약이 95%정도 배설되거나 소실되기까지에는 DDT가 4∼30년,「디엘드린」은 5∼25년, 「린덴」은 3∼17년이 걸리는등 평균 10년이상의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다.
때문에 그에 따른 증상은 7∼10년이 경과한 뒤에야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흔히는 2세대에 가서 비로소 나타나기도 한다. 이렇게 볼 때 유독성농약의 생산판매를 규제키로 한 당국의 조치는 만시지탄이 있으나 참으로 적절한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농과의 잔류기간이 오랜것을 생각할 때 앞으로 고씨일가와 유사한 농약피해자가 언제 어디서 또 얼마나 더 나타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고씨사건을 계기로 즉각 우리 나라의 중금속공해실태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를 실시하는 한편, 새삼 농약의 부정적 측면을 가급적 억제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되겠다.
특히 수은중독사건과 같은 농약피해상황을 자꾸 은폐하려는 호도책을 지양하고, 농약공해에 대한 철저한 계몽을 실시하고 전농민들을 대상으로한 검진체제를 확충강화함으로써 농약사용에서 오는 피해의 발생을 최대한으로 줄여나가는 적극적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중요한 것은 피해자에 대한 피해배상문제다.
모든 공해가 그러하듯 농약공해도 재산적인 손해에만 그치지 않고 그 피해자의 건강과 생명에까지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기 마련인 것이다.
게다가 그 피해는 대부분의 경우 간접적이고 계속적이며 일단 발병했다하면 현대의학으로써도 거의 치료방법이 없는 사실이 고려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이러한 피해에 대한 사법적 구제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돼있지 않아 현행법제 하에서는 그 구제는 기껏 민법의 일반원칙에 의할 수밖에 없게 돼있다.
이 때문에 농약공해로 인한 피해자가배상을 받기 위해서는 가해자의 불법행위를 스스로 입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공해란 그 피해가 간접적일뿐 아니라 가해자마저도 불특정다수인인 경우가 많아 불법행위의 입증이 결코 용이하지 않다. 따라서 영세농민들로서는 피해보장을 받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농약공해에 한해서라도 인과관계입증방법의 개혁, 무과실책임제등을 도입함으로써 피해자에 대한 구제방안을 마련해 주기 바란다.
농약에의 의존도가 날로 증가함에 따라 이로 인한 피해가 더욱 큰 사회문제로 등장할 것은 자명하다.
하루 빨리 모든 가능한 방법과 수단을 강구하여 농약화의 방지와 구제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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