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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자성 "최고의 뉴스 만들지만 … 익숙한 것만 하려는 게으름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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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금 장안에 저널리즘 공부 좀 한다는 사람이면 모두 읽고 있다는 문서가 있다. 뉴욕타임스(NYT)의 혁신 보고서(사진)다. 보고서가 인터넷에 유출된 시점이 에이브럼슨 편집인이 경질된 시기와 겹치면서 보고서 유출 배경에 대한 온갖 소문이 난무하기도 했다.

 NYT 최초의 여성 편집인을 지낸 에이브럼슨은 지난 15일 해고당했다. 그녀는 자신에 대한 처우가 과거 편집인들에 비해 부족했으며 여성이기에 차별받았다고 불평했다. 반면 슐즈버거 발행인은 그녀가 자의적으로 행동했으며 동료들과 잘 지내지 못했다고 응수했다. 모든 사정을 종합해 보면 에이브럼슨이 혁신 보고서에 대해 방어적으로 대응한 게 문제였다. 그녀는 보고서의 제언에 따라 디지털-우선 정책을 담당하는 국장급 인사를 영입하던 중이었다. 가디언의 미국 담당 편집장이었다. 그러나 NYT 발행인과 편집국장은 그들과 상의도 없이 이렇게 행동하는 에이브럼슨이 디지털-우선 정책을 관리하는 데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한편 에이브럼슨의 영입대상이었던 가디언 미국 담당 편집장의 행보를 확인해 보니 얄궂기 짝이 없다. 가디언 닷컴 편집장으로 영전해서 런던으로 돌아가는 길에 NYT 디지털 전문가를 데리고 가버렸단다. 에이브럼슨 소동 중에 NYT는 오히려 디지털 전문가를 잃은 결과가 됐다.

 혁신 보고서의 내용만큼이나 톤이 엄중하다. 분명 내부 보고서인데 세계의 모든 언론인에 대한 도발로 들리는 구절이 계속된다. 72쪽에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는 세계 최고의 뉴스를 쉴 새 없이 만들어 내고 있지만 사실 게을러서 그런지 모른다. 가장 편하고 익숙한 일만 하기 때문이다.” 준엄한 자성이라 아니할 수 없다. NYT 1면을 어떻게 편집할지 고민하는 언론인은 충분하단다. 문제는 디지털이다. 뉴스를 새로운 매체를 통해 더 많은 이용자에게 전달할 것을 고민하는 디지털 기술자, 이용자전략 전문가, 자료 분석가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용자 개발을 담당하는 임원급 인사를 영입하고 편집국 전략팀을 구성하라는 게 요지다. 보고서를 작성한 과정과 방법론도 주목할 만하다. 8명의 젊은 기자들이 2명의 선배 언론인의 조언을 받아 6개월 동안 300명 이상의 사내외 기자와 매체전문가를 인터뷰했다. 8명의 작성자 중에 NYT 발행인의 아들이 있다. 이들은 처음에는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한 제언 정도를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NYT의 핵심, 즉 신문 그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보고서를 읽는 내내 전율했다. 세계 최고의 언론사도 혁신을 고민하고 있는데 우린 무엇을 하고 있나. 세월호 사태를 보면 한국 저널리즘의 기초가 생각보다 허술하면서 또한 완고하다. 혁신이란 기초를 새롭게 닦는 일이다. 허술하지만 완고한 기초를 새롭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말로만 혁신이 아닌 구체적 연구와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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