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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유치원 만들었더니 '엄마 생산성' 쑥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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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올해 초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카드사 정보유출 사고는 엉뚱한 피해자를 낳았다. 금융 당국이 전화 영업을 제한하자 애꿎은 텔레마케터들이 해고되거나 무급휴직을 당했다. 대부분 여성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무색하게 한 기업이 있다. 금융권 콜센터 위탁운영업체인 ㈜한국고용정보다. 이 회사도 금융당국의 조치로 631명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직장을 떠날지 모르는 처지에 내몰렸다. 하지만 아무도 짐을 싸지 않았다. 이 회사의 교육훈련 시스템 덕분이다. 154명은 유급훈련으로, 나머지 477명은 배치전환을 통해 고용상태를 유지했다. 이들의 자녀는 사내에 설치된 어린이집과 방과후 학교를 이용한다. 육아휴직 대상자(90명)는 거리낌없이 휴가를 떠났다. 여성 관리자 비율(87%)도 여성 직원 비율(87.8%)과 같다. 열심히 일하는 여성을 좌절케 하는 유리천장이 없는 것이다.

이 회사 손영득 대표는 “2012년부터 여성에 대한 복지체계를 확충한 뒤 일일 평균 성공 콜수가 경쟁사 대비 29%나 많아졌다”며 “직원들의 사기가 진작되면서 회사로선 생산성도 높아지고, 구인난도 없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의 자동차시트 제조업체인 더프라이드(대표 김선일)는 제조업종에선 드물게 여성 천하 기업이다. 전체 205명의 직원 중 165명(80.5%)이 여성이다. 여성 관리자는 40%에 이른다. 이 회사에 여성이 이렇게 많아진 것은 불과 3년 만이다. 2012년 채용된 여성은 16명에 불과했다. 지난해에는 61명으로 불었다. 더프라이드에는 사내 유치원(이 회사는 어린이집을 유치원이라고 한다)이 있다. 올해부터는 1억8000원을 들여 여성의 장기근속 유지금을 지급한다. 통근버스는 인근 시·군까지 운행한다. 이러다 보니 여러 가지 이유로 나갔던 여성들이 다시 회사 문을 두드린다. 두드리면 무조건 재고용된다.

 여성 복지가 고용의 새로운 트렌드로 등장하고 있다. 여성 고용이 많은 서비스업은 물론 제조업까지 업종에 예외가 없다. 기업 입장에선 경력이 있는 여성을 채용함으로써 교육비를 절감할 수 있다. 한번 경력이 단절됐던 여성들은 일에 대한 애착이 강해 생산성도 올라간다. 기업의 인사·채용 숨통이 트이는 것이다. 고용노동부 이수영 고령사회인력심의관은 “경력단절 여성=비정규직이란 공식이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다”며 “처음엔 중소기업에서 여성에 대한 복지확충이 눈에 띄었으나 최근엔 대기업도 예외가 없다”고 말했다. 여성 근로자에 대한 복지책의 방향은 크게 두 가지다. 임신·출산·육아에 따른 모성보호와 남녀 차별 없는 유리천장 철폐다.

 아예 임신 초기부터 회사가 직접 관리하는 기업도 많다. 효성ITX 직원 6591명 가운데 80.7%인 5318명이 여성이다. 이 회사에선 임신을 하면 하루 3시간, 4시간, 6시간 가운데 하나를 택해 근무할 수 있다. 수유실과 산모 휴게실은 물론 출산교실, 베이비 마사지 교실도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은 임신 초기부터 매달 태아검진휴가를 부여하고, 검진비용도 회사가 낸다. 야간근무나 시간외근무를 제한한다. 광주신세계는 임신 시점부터 출산 전후 휴가 전까지 하루 최대 7시간까지만 근무토록 제한한다. 출산휴가와 별도로 육아휴직 기간이 2년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류기정 사회정책본부장은 “이들 기업에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등 독려정책이 뒤따른다면 여성의 고용도 늘고, 기업도 생산성 향상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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