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오늘의 교육풍토를 총 점검한다|찐빵이「도너츠」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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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해 10월 ×일. 서울 변두리 지역에 있는 R국교의 운동회 날이자 소풍날이다. 다음날도 운동회와 소풍이 계속됐다. 첫날은 2·4·6학년이 운동회, 1·3·5학년은 소풍, 다음날은 이를 바꾸어 2·4·6학년이 소풍, 1·3·5학년은 운동회. 결국 학교측으로 보면 운동회와 소풍을 이틀씩 계속한 셈이 됐다.
한번 운동회롤 하는데도 3천3백 명이 넘는 어린이들이 참가한다. 전교생은 82개 학급에 6천7백여 명. 결국「큰 행사」를 이틀간 계속 치르다 보니 어린 학생들은 물론 교사들도 「녹초」가 됐다. 그래서 올해는 이 같은「편법」조차 아직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실행 어려운 사도>
그전까지는「절반 운동회」가 열리는 날 나머지 학생들은 공부를 하는「2부제 운동회」를 열었다.
그러나 운동회가 있는 날 운동회가 없는 학생들의 공부가 제대로 될 리는 만무한 일-. 그래서 공부 대신 소풍을 가기로 묘안을 짜냈으나 이것도 피로만 겹칠 뿐 「뾰족한 수」는 되지 못했다. 이래저래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단 한 가지 학생 수가 많다 보니 생긴 어려움이 있다.
R국교의 학급당 평균 인원은 82명. 6학년은 90명에 육박한다. 이나마 76년11월 인근에 N국교가 신설돼 상당히 빠져나간 것이 이 정도에 이른다.
『개인지도는 커 녕 숙제검사도 적당히 할 수밖에 없어요. 제대로 보려면 몇 시간은 걸릴 겁니다.』6학년 담임 L교사의 말이다.『학습진도가 부진한 학생을 특별 교육한다든지 자상하고 인자한「사도」의 문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실토했다.
설립당시인 72년에만도 전교 16개 학급이었던 이 학교가 이처럼 비대해 진 것은 불과 3년 전의 일.
강남이전「붐」과 함께 비교적 집 값이 싼 이 주변에 인구가 갑자기 늘어나면서 장마철에 개울물 불어나 듯 학생들이 늘기 시작했다.
많을 때는 하루 10여명씩 전입생이 몰려 마치 동사무소의 전출 입 신고 같았다는 것. 불과 6년 사이에 꼭 5배로 늘었다. 대대가 사단으로 변했다고 나 할까.
『전체조회는 생각지도 못해요. 할 수 없이 조회도「2부제」가 됐습니다』-. 교감선생(47)의 설명이다.
사당동의 N국교의 경우엔 67년 11개 학급으로 개교했는데 초년에 67학급이던 것이 현재는 96학급에 7천2백여 명을 헤아리게 됐다. 해마다 학생들은 눈사람처럼 부풀기만 했는데도 운동장 등 시설은 이를 뒤따르지 못했다.

<"운동장이 없다">
그러다 보니 76년까지만 해도「2부제」일 망정 운동회랍시고 행사를 치렀으나 지난해에는 그나마 포기하고 말았다. 절반만 모이는 행사에 참가하는 학생들이 3천6백여 명이나 되고 보니 학교측에서 엄두를 못 낸 것은 당연한 일.
같은 변두리지역인 강남의 K국교는 이보다 더 많은 1백5개 학급, J국교는 99개 학급에 학생 수는 7천3백여 명.
따라서 이 학교의 전체조회는 4∼6학년만을 대상으로 한다. 나머지 학년은 학년별 조회를 갖고 있다.
공항 근처의 K중학은 52개 학급에 학생 수는 3천5백30명으로 국내에서는 최대(?)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역시 74년부터 학생들이 늘기 시작해 최근 4년 동안 2배가 됐다.
올해 인근에 중학교가 새로 생겨 이곳으로 학생일부를 넘겨주면「최대중학」이란 이름은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전망이다. 이같이 변두리 사정과는 달리 도심의 학교들은 학생들이 자꾸 줄어 폐교 또는 강남이전을 서두르고 있다. 서울의 학교는「찐빵이 도너츠」로 돼 가고 있다. 도심에 몰려 있다가 변두리가 살찌는 것이다.
한때「명문」국민학교로 이름을 떨쳤던 종로구의 D국교는 68년 중학입시가 폐지되면서 서서히 학생들이 빠져나가 64학급 5천여 명의 학생이 이제는 41학급 3천1백여 명으로 줄었다. 게다가 이만큼이라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72년 같은 관내의 C국교 등 2개교가 폐교되면서 이 학교 학생 일부를 받아들였기 때문.

<도심 교 속속 폐문>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K사립국교는 현재 B개 학급만으로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인기가 있을 때 비해 꼭 절반으로 줄어든 것.
「도너츠 현장」은 올해 취학 어린이 분포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시교위에 따르면 올해 취학어린이들은 모두 19만7천1백77명으로 15개 학구에 평균 1만3천명선.
이 가운데 영동·관악 등지는 2만3천∼2만5천 명씩 몰려 있는데 비해 종로나 중구는 고작6천∼7천 명 선에 머물러 있다. 강서구의 경우 지난해 6천8백여 명이 던 것이 올해는 1만1천여 명으로 60%나 늘었다.
문교부 조사에 따르면 전국 국민학교 10만3천6백63개 학급 중 15·3%인 1만5천8백59학급이 70명 이상 수용하고 있는 과밀학급이며 교육법에 명시된 60명을 수용하고 있는 학급은 68·1%인 7만6백34학급에 불과했다. 또 대도시 국교의 경우 학급당 평균인원은 74명이며 당장 2부제 수업을 없애기 위해서는 5천6백7개 교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도심지에서는 줄어들다 못해 뻥 뚫리고 외각에서는 돌아가며 부풀어 나고…. 학교의「그린벨트」가 쳐지는 것이나 아닌지-.
「도너츠 현상」의 1번 타자는 69년의 청 계와 삼청 국교였다. 뒤이어 방산 국교가 70년에, 종로와 을지 국교가 72년에 폐교되는 등 지난해 수송국교까지 10개 국민학교가 문을 닫았다. 모두 종로와 중구 관내의 도심지 학교들이었다.

<손발 안 맞는 행정>
이 같은 현상은 중-고교에서도 마찬가지-. 휘문·경기·덕수 등 이 이미 강남으로 이사를 갔고 8개 중-고교가 올해에 옮길 채비를 하고 있으며 그밖에 10개 중·고교가 강남이전을 계획하고 있다.
77년 말 현재 강북지역에는 16개 학교가 남아돌고 강남 쪽은 53개교가 모자라는 실정이었다.
강북 쪽에 16개 정도가 남아 돌아간다는 것은 도심 권을 말한다. 따라서 이 지역의 학교이전을 권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시교위 측의 말이다.
물론 인구분산에 따른 학교이전이나 신설 등 이 불가피 한 것이지만 신설학교 운동장이 비좁아 조회조차 하지 못한다거나 개교한지 몇 해 안돼 증축공사를 벌이게 된 것은 결국 개발행정과 교육행정이 발을 못 맞추고 있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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