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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복 맞춘 축구대표팀 - 원 팀, 원 골, 원 패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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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자부심과 위엄이 담긴 브라질 월드컵 축구대표팀 공식 단복이 22일 파주 트레이닝센터에서 공개됐다. 주장 구자철(오른쪽 다섯째)은 “국가대표만 입을 수 있는 옷이라 더 남다르다”고 말했고, 홍명보 감독(가운데)은 “선수들이 단복 안에 새겨진 슬로건을 몇 번이고 읽으며 결의 를 다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파주=김진경 기자]
브라질 월드컵 단복 상의 안쪽에 새겨진 축구대표 팀 슬로건. 아래는 단복을 입은 1954년 월드컵 선수들. [사진 갤럭시·이재형 축구역사문화연구소장]

1954년 6월 15일 월드컵이 열리는 스위스에 도착한 한국 축구대표팀은 아시아 최초 월드컵 참가국으로 외신 기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한 기자는 “양복 바지가 왜 이리 짧은가. 유행인가”라고 물었고, 한국의 한 선수는 “우리는 전쟁을 겪은 나라다. 물자 절약을 애국으로 여겨 모두 바지를 짧게 입는다”고 재치 있게 답했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54년 스위스 월드컵 단복 사진에 담긴 비하인드 스토리다. 당시 한국의 국가 재정과 축구협회 실정은 원정 경비를 대기에도 빠듯했다. 단복은 언감생심이었다. 선수들은 양복점을 찾아가 통사정해 외상으로 단복을 맞췄고, 출국 날까지 돈을 갚지 못해 야반도주하듯 비행기에 올랐다.

 단복 원단이 좋지 않았을뿐더러 48시간이 넘는 비행 탓에 양복 바지는 구겨지고 말려 올라갔다. 한 선수는 허벅지까지 바지가 올라가 있었다. 한국은 본선에서 스위스(0-9)와 터키(0-7)에 참패했다. 하지만 한국 축구대표팀은 첫 출전한 월드컵에서 ‘외상 양복’을 입고도 기죽지 않고 당당했다.

 60년의 세월이 흘렀다. 브라질 월드컵에 출전하는 축구대표팀 공식 단복 ‘프라이드 일레븐(Pride11)’이 22일 공개됐다. 대표팀이 결전지로 향할 때 착용할 단복은 남성복 브랜드 ‘갤럭시’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이어 2회 연속 제작했다. 단복 색깔은 군청색에 가까운 ‘네이비 블루’다.

 격세지감이다. 이번 대표팀 단복에는 국가대표의 자부심과 위엄이 담겨 있다. 54년과 달리 최고급 원단으로 제작됐고, 장시간 여행 때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기능성에 공을 들였다. 허벅지가 굵고 허리가 얇은 선수들을 위해 치수도 각자 체형에 맞췄고, 음악을 들으며 긴장을 푸는 선수들을 위해 상의에 이어폰 구멍도 마련했다.

 상의 안쪽 아랫부분에는 축구대표팀 슬로건인 ‘One team, One spirit, One goal(원 팀, 원 스피리트, 원 골)’이 새겨진 라벨을 붙였다. 홍명보(45) 대표팀 감독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선수들이 브라질행 비행기 안에서 단복에 새겨진 슬로건을 몇 번이고 읽으며 결의를 다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장 구자철(25·마인츠)도 “ 국가대표만 입을 수 있는 단복이라서 더 남다르다”고 말했다. 이날 선수들은 진지하게 촬영에 임했고, 절도 있는 발걸음으로 국가대표의 품격을 보여줬다.

 늘 경기 날 정장을 입는 홍 감독은 “경기를 직접 뛰지는 않지만 리더로서 정장차림을 통해 선수들에게 ‘난 준비돼 있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선수들이 날 신뢰하고 자신감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월드컵 본선 참가국이 자국 브랜드 단복을 입는 건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축구대표팀이 패션업체와 연계해 국가 이미지 향상을 노리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자국 디자이너 돌체 앤 가바나가 제작한 단복을 입고, 프랑스도 자국 럭셔리 브랜드 크리스찬 디오르 단복을 착용한다. 독일은 휴고 보스 단복을 입는다.

 한편 한국은 54년 스위스 월드컵 이후 32년 만에 진출한 멕시코 대회 때도 단복을 입었다. 94년 미국 월드컵에 지원 업무를 맡았던 이해두 축구협회 대외사업실장은 “당시 유니폼은 라피도라는 브랜드에서 맡았고, 단복을 제일모직에서 받았다”고 말했다.

파주=박린·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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