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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정경화 바이올리니스트·이화여대 석좌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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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동영상은 joongang.co.kr [최효정 기자]

나의 무덤 앞에서 이젠 울지 말아요.

나는 거기 없어요, 나는 잠들지 않아요.

나는 이리저리 부는 천 개의 바람이에요.

(중략)

나는 밤이 되면 부드럽게 빛나는 별이에요.

나의 무덤 앞에서 이젠 울지 말아요.

나는 거기 없어요, 나는 죽지 않았어요.

- 메리 엘리자베스 프레이(1905~2004)

‘나는 천 개의 바람이에요’ 중에서

13살 때 미국으로 음악공부를 하러 떠난 나는 지금도 한국에 오면 그 시절 소녀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두려움 많고 질문이 끝이 없었던 어린 내가 되살아나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린다. 20대에 세계 음악 무대에서 최고 연주자가 되겠다는 꿈을 달성하려 몸부림치며 살 때는 항상 ‘나 나 나’ 하며 나를 중심으로만 살았다. 결혼하고 첫 아기를 낳았을 때 비로소 생명의 소중함을 알았다. 나는 창조자가 되어 상상도 못할 기쁨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책임감을 느꼈다.

 손가락 부상을 이겨내고 연습에 몰두하고 있을 때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두 아이의 어미인 나는 바다 밑으로 사라진 그 소년소녀들 혼이 없어지지 않았다고 믿는다. 아이들은 우리랑 같이 있다고 믿는다. 모두 더 좋은 세상에서 다시 만나리라 믿는다.

 참담한 와중에 이 시를 노랫말로 한 음악을 들었다. 음악은 내 뼛속, 몸속, 혼에 녹아들어 나를 지탱해주는 보물이다. 음악은 그만큼 위대하다. 지금 마음이 갈가리 찢어지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넋을 놓고 계실 아이들의 부모님께 이 음악을 바친다. 그 아이들이 우리 미래를 다시 일으켜 세울 큰 바탕이 될 것을 믿는다. 정경화 바이올리니스트·이화여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