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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출판|<한만년씨에 듣는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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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77년은 연초의 검인정 교과서사건으로 출판계가 호된 홍역을 치른 한해였다.
따라서 78년 출판계의 최대과제는 77년의 상처에서 비롯된 사회의 불신을 얼만큼 씻어 낼 수 있느냐 하는 것. 그러나 대한 출판 문화협회 한만년 회장이 말하는 78년 출판계의 전망은 그저 밝지 않다. 그 후유증으로 금년에 교과서가 전면 개편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검인정 교과서 파동은 한마디로 말 할 수 없는 복합적인 요인이 개재돼 있지만 출판계의 잘 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금년에 있을 교과서 개편 작업은 출판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리라고 봅니다.
우선 교과서 제작 신청을 했다가 탈락된 출판사들은 커다란 경제적 피해를 보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출판계 전체가 상당히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또 조판해야 할 교과서의 원고가 한꺼번에 몰려서 일반 도서나 잡지 제작에 지장을 주게 되고 이것이 제작비 상승에 부채질을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작년 12월1일부터 전국적으로 시작된 각종도서의 정가 판매제 실시로 이제까지 서점에서 할인해 준 것만큼 책값이 떨어지지 않겠느냐는 것이 일반적인 전망이었으나 제작비가 상승하면 그렇지 않아도 비싸다는 소리를 듣는 책값이 더 오를 가능성도 엿보인다.
『그러나 책이란 정가에 좌우되는 면보다 내용에 좌우되는 면이 강하다고 봐요. 요컨대 좋은 책을 만들면 책값이 비싸도 사서 읽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 회장의 말대로 교과서 때문에 책값이 인상된다면 정가제실시로 자취를 감출 것이 예상되었던 「덤핑」행위도 그대로 횡행하지 않을까. 이럴 경우 양서와 악서를 구분하는 독자의 안목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게된다. 그런데 문제는 「덤핑」행위와 유사한 출판계의 일반적인 투매 행위다. 즉 경쟁적으로 무작정 책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발행 종수 1만종을 돌파한 것이 금년으로 3년째입니다. 1만종이라면 상당하구나 생각되겠지만 발행 종수가 많다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현장은 아니예요. 5만부다, 10만부다 해서「베스트셀러」라고 좋아하지만 그 뒷전에 처져 있는 책들은 그냥 폐품이 돼버리고 말거든요.』
소설이 잘 팔린다 하니까 너도나도 소설집 간행에 뛰어들어 한 작품이 여기저기 중복 수록되는가 하면 소설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작금의 출판계 풍토에는 확실히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또 하나 생각해야 할 점은 교과서를 제외하면 아직도 국내 저작자에 의한 출판물은 번역물에 비할 때 보잘 것 없다는 것. 그렇다고 해서 섣불리 국제저작권협회에 가입한다는 것도 생각해볼 일이다.
『저작권법의 초안이 작성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우리 나라가 처해있는 전반적인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앞으로 당분간은 현 상태가 유지돼야 한다고 봐요.』
현재 우리 나라의 출판업자는 모두 1천3백여개사. 상당수의 업자들이 도중 하차 하고 있지만 전체 수효는 매년 증가일로에 있다.
금년은 그 숫자가 더욱 늘어나리라는 전망. 한 회장은 「출판의 자유」를 들어 신입회원의 규제의사는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러다 보면 알맹이 없는 출판왕국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 같다. <정규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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