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의 연두 기자 회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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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박정희 대통령은 18일 연두 기자 회견을 통해 국민 총화 체제의 공고화, 경제의 안정과 지속적 성장, 자주 국방력 강화가 새해 시정의 기본 방향이라고 말했다. 이는 수년내의 정책기조가 변함없이 지속된다는 것을 뜻한다.
더구나 올해에는 예년과 같은 어떤 극적인 발표나 제의마저 없었다. 올해가 선거의 해라는 것을 감안하면 변함없이 현재의 안정기조를 지속하려는 의지가 더욱 돋보이는 이유라 하겠다.
대통령 재출마 여부에 대해 박 대통령은 새로 구성될 통일 주체 국민회의의 다수대의원들에 의해 결정될 문제라고만 답변했다. 그러면서 유신체제가 계속 유지, 발전되어야 할 당위성을 강조했다.
『권력의 인격화』만 말이 생겼듯이 「프랑스」의「드골」헌법체제는 「드골」이란 지도자를 전제로 그의 인격을 제도화한 측면이 강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유신체제는 어떤 지도자의 인격을 투영한 것일까. 두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박대통령이다.
그런 의미에서 재출마 문제에 대한 언급이 비록 조건부이고 간접적이었다 하더라도 유신체제에 대한 소신 표명에 비추어 그 깊은 뜻을 어느 정도는 헤아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되는 것이다.

<대미 외교의 재정립>
외교·안보문제에 대해선 특히 대미 외교와 방위 산업의 눈부신 발전이 강조되었다.
우리 안보 외교의 주축이 대미 외교임은 정부 수립 이후 30년 동안 일관된 것이긴 하나, 이 시기에 새삼 대미 외교가 강조된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지난날의 대미외교 중시는 그야말로 객관적 상황으로 보아 선택의 여지없는 일방적인 대미 의존이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국력이 신장되고 또 박동선 사건의 홍역을 치르다보니 한미 관계의 존재 양식도 재편성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 재편성의 진통에도 불구하고 이 시점에서 다시 대미외교가 강조되었다는 것은 현안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차원에서 한미 우호 관계를 재정립하겠다는 주체적인 선택으로서의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북괴에 비해 훨씬 늦게 시작한 우리의 방위산업은 경제 성장으로 축적된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이미 북괴의 수준을 따라 잡았다.
방위산업의 진척 없이 진정한 국방의 자주화는 이뤄질 수 없는 것이다. 기술의 고도화·정밀화와 아울러 우리의 지형과 체격에 맞는 병기의 토착화에 특히 유념해 주었으면 한다.
한국경제는 작년에 1백억 「달러」의 수출을 달성한데 이어 금년엔 1인당 GNP가 1천 「달러」를 넘을 것이다. 경제의 양적 성장 면에서 4차 5개년 계획의 여러 목표가 조기 달성되고 있는 것이다.

<성장 지향의 정책 기조>
박 대통령은 이런 성장 지향의 정책기조가 금년에도 계속될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중화학공업의 본격적인 추진, 사회 간접자본의 확충, 식량 증산의 계속, 민간투자의 확대유도 목표 등이 그런 방향을 잘 가리키고 있다.
지속성장은 한국경제가 어차피 가야할 방향이다. 그러나 지속 성장을 위해선 내외정세의 근본적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조화를 도모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특히 지적했다.
우선 밖으론 우리의 무역 및 경제 규모 면에서 과거와 같은 일방적인 수출「드라이브」나 보호 장벽의 온존이 간과되기 어려울 것이다. 올해 우리가 특히 세계경제와의 호혜적인 조화 속에서 현명한 생존과 번영의 길을 찾아야할 이유다.
이점, 우리도 이제 국제적 시야에서 경제를 운용하고, 경협 확대와 국제 사회에의 적극적인 참여가 요망되며 또 안으로는 이러한 대외 여건의 변화에 따른 정책대응을 서둘러야 한다.
정책조정이 늦을수록 「인플레」와 국제적 마찰을 심화시킬 것이지만 행정적 차원에서의 신속한 대응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고차원적 발상전환과 결단이 필요할 것이며, 이 길만이 외부로부터의 압력을 완화하고, 충격적인「쇼크」를 사전 예방할 수 있는 방도가 될 것이다. 오늘날 경제대국 일본이 겪고 있는 고민과 국제적 마찰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국민 복지와 인간성 회복>
한편, 박 대통령은 경제 성장의 추진이 국민생활 안정과 국토 환경 보전에 배치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할 것임을 역점을 두면서 지적했다.
경제성장의 궁극적인 목표가 국민 복지 향상이라는 기본인식아래 물가안정·고용·교육기회의 보장·주택 환경의 정화에 깊은 배려를 하겠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그 상징적인 예로서 「버스」안내양들의 대우문제를 거론했는데 이런 복지적 관심과 배려가 사회의 구석구석까지 미치고 일반화 되어야할 것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국민 모두의 생활안정을 보장하고 그 창의성과 성실성 개발을 위해선 물가안정이 기본적인 바탕이 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박 대통령의 회견 가운데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물질적 풍요와 양적 성장에 가려진 그늘에 관한 언급이다. 물량적 성장을 추구하는 나머지 잃어버리게 된 인간성 회복문제와 전통문화의 재인식을 위해 박 대통령은 사회 개발의 본격적인 추진을 다짐한 것이다. 교육·공해·자연 파괴 등은 손쓰는 것이 늦으면 치유가 어려워진다.
물질적 성장에 반비례한 정신적 황폐화에 대해 박 대통령이 깊은 우려를 표명한데 대해서는 우리도 깊이, 공감하는 바이며 이를 GNP 신화에 대한 경종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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