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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민공원엔 '몸값 2억' 녹나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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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부산시민공원 호수 안에 설치된 산책로. 물이 차지 않도록 설계된 공간에 걸어 들어간 나들이객들이 호수 밖에서는 마치 물속에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송봉근 기자]
나무 값만 2억원인 녹나무(위)와 한국에서 개발한 리기테다 소나무.

부산시민공원이 개장 20일을 넘기면서 주말에는 20만 명이 찾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도심인 범전·연지·양정동 옛 미군 하야리아(Hialeah)부대 터 53만799㎡(16만여 평)에 조성된 부산시민공원에는 100만 그루의 나무가 있다. 이 나무 구입에만 120억원이 들었다. 이들 나무 속에는 갖가지 사연이 숨어 있다. 작은 나무 97종 85만 그루는 6300여 명의 시민이 기증했고, 나머지 15만 그루는 부산시가 사들였다. 국내에서 100만 그루를 인공조림한 공원은 드물다.

 많은 시민이 편의시설에 관심을 쏟지만 이곳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나무와 정원 ▶일본과 미국이 점령했던 역사 흔적 ▶문화와 편의시설 순서로 둘러보는 것이 유익하다.

 남문을 들어서면 반기는 녹나무는 연산동 부산시청 도로 공사장에서 옮겨온 것이다. 녹나무는 남쪽 해안가 어부림의 대표나무로 무성한 숲을 자랑한다. 낙엽층이 두꺼워 숲 아래 흙 속에는 각종 미생물이 많이 산다. 이 미생물이 비가 오면 바다로 흘러가 물고기를 불러 모으기 때문에 어부림으로 사용됐다. 나무값만 2억원으로 공원 내에서 가장 비싸다. 시가 보호수 지정을 추진하는 이유다.

 잔디광장 동쪽의 리기테다 소나무는 고 박정희 대통령과 인연이 있다. 산림녹화 정책을 펴던 박 대통령은 임학자였던 고 현신규(1911~86) 박사에게 우리나라의 헐벗은 산에 맞는 나무 개발을 지시했다. 서울대 교수였던 현 박사를 산림청 임목육종연구소장으로 임명하고 특명을 내린 것이다. 연구 끝에 현 박사는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는 ‘리기다’와 목질이 좋은 ‘테다’ 소나무를 교잡해 리기테다를 개발했다. 리기테다는 세계 임학계가 인정한 우수 수종이다. 동남아 여러 나라에 많이 심어져 있다.

 일제시대부터 부산시민공원 내부 도로에 있던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 90그루는 남 4문 근처로 모두 옮겨졌다. ‘기억의 숲’이 된 것이다. 양버즘나무는 새 순이 잘 나며 최고 높이 45m까지 자라 가로수로 많이 심어졌다가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부산시민공원 터를 일본과 미국이 번갈아 점령했던 흔적은 역사관(지상 1층 1061m²)에서 찾을 수 있다. 일제강점기 땐 마권판매소로, 미군 부대가 있을 땐 장교클럽으로 쓰인 곳이다. 옛 미군 하사관 숙소는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문화예술촌’으로 꾸며졌다. 사병 숙소였던 퀀셋 막사는 ‘뽀로로 도서관’과 카페·휴게실로 변했다. 미군부대가 들어오기 전 마을 주민들이 사용하던 우물도 복원됐다. 공원 서쪽을 흐르는 2.5㎞의 전포천은 폭 20∼74m 생태하천으로 되살아났다. 근처 KTX 터널에서 나오는 맑은 물이 흐른다.

 주말 20만 명, 평일 수만 명이 찾으면서 공원은 쓰레기와 주차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부산시가 대책을 서두르고 있다.

 국립수목원 박광우(61) 박사는 “자녀와 나무에 얽힌 사연을 중심으로 공원을 둘러보면 더 재미있다”며 “부산시가 나무에 얽힌 사연을 알려주는 설명문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글=김상진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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