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한 마디 말이 삶의 훌륭한 스승|이경숙씨(서울대 음대교수·성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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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강 기슭에는 이제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강이 좋아 강을 끼고 사는 풍경이 늘어간다. 기슭의 얕은 물이 얼어가는 추위속에소도 강둑을 따라 여기 저기 높은 집들을 짓는 공사는 멎을 기색이 없다. 77년의 마지막 일요일인 지난 25일 나는 정처 없이 강 따라 걷고 싶어 집을 나섰다.
겨울 강은 바닷물처럼 유난히 푸르게 흐르고 있다. 굽이굽이 돌아 얼마를 잤는지 모른다. 되돌아오며 강과 산과 하늘만이 눈에 들어오는 기슭까지 갔으니-.
오다가 한 지점에 이르러 그럴 수 없는 한 폭의 풍경화에 마주쳤다. 도도히 흐를는 푸른 장강, 그 먼 전경 양쪽에 연한 산들그 위를 은빛 저녁 하늘이 덮고 있다. 어느 천재의 화필일까. 화면에는 은은한 회색 빛이 흐르고 있고 먼 산 들은 보일 듯 말 듯 하면서도 뚜렷하게 음영의 계단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물체와 광선, 공간과 시간이 어우러져 구성된 풍광이요, 어느 지점과 어느 시점이 맞닿는데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 지점과 그 시점이 만나는 순간은 곧장 눈앞에서 사라졌지만 마음에는 지워지지 않을 영상으로 남아있다.
강은 흐르고, 사람은 가고, 세월도 지나고, 만물도 풍경도 기억도 변하여 간다. 하나, 쉬지 않는 변화 속에도 어느 때 어느 곳에선가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듯 때가 무르익는 순간이있어 사람을 기쁘게 한다.
참 시간이라 할까. 그 것은 순간이 지나도 영원히 마음 속을 떠나가지 앉는다. 이 순수한 시간은 생활 속에서 견고한 감동의 돌을 딛고 세월을 뛰어넘는다.
77년에 우리가 만난 두 예술가는 그런 넘치는 감동을 우리에게 주었다.
「피아니스트」 「아슈케나지」가 안겨준 진실의 정밀, 「테너」「파바로티」가 들려준 환희의 밀어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들이 무대 위에서 극한의 고독속에만 이루어질 수 있는 예술의 극치를 펼쳤을 때, 우리는 생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중하고 보람찬 것인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진정 고귀한 것은 내 것이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만인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지는 해를 보내며 마음은 우수의 짙은 안개로 휩싸인다. 요즘 들어 부쩍 세월의 흐름에 민감해지고 상념에 젖어드는 시간이 많아진 것은 나이 탓일까. 노래에 온 경력을 쏟고 보다 좋은 노래를 부르려 하지만 이제 나의 노래가 어떤 것인가를 알기에 아쉬우과 허전함이 절실해진다.
예술뿐 아니라 생활도 기쁨·슬픔·즐거움이 교차하는 가운데 감동의 순간을 열어준다. 그것은 평범한 일상에 의미를 부여한다. 겨울이 되면서 나는 딸과 많은 시간을 갖게 되었다. 방학은 모녀를 서로 다시 발견케 하였다.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제일에 바쁘게 쫓겨 헤어나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한가한 시간을 같이하며 밀리고 쌓인 얘기를 나눈다. 그래서 나의 마음은 후련해지고 어린것도 행복한 것을 환히 피어오르는 낯빛으로 알 수 있다.
『엄마,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요…』 딸이 준 「크리스머스」축원의 한 구절. 나는 그것을 읽으며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마음의 파문을 느꼈다. 어린 마음은 어른의 세계를 너무나 잘 들여다보고 있다. 그리고 아픈데를 찔러낸다. 천의무봉한 마음에 엄마의 심사가 어떻게 비친 것일까. 그때 아이는 삶의 훌륭한 스승이 된다.
해외로 연주여행을 나갔던 젊은 후배가 돌아왔다. 땅거미가 짙어가는 세모의 저녁 선·후배는 마주앉아 끝도 없는 얘기를 나누었다.
노래와 모습이 수정같이 아름다운 그녀는 혼기를 맞아 어떤 신랑을 맞아 인생을 설계할 것인가고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
『네가 하고자하는 일, 가치 있다고 믿는 일을 소중히 여기고 참되고 아름답게 살기 위한 슬기를 북돋워줄 구혼자면 되지 않겠니….』
세모. 한해의 막이 내리는 시각이다 어둠이 닥쳐와 만물과 만사를 싸아버린다. 현재가 영영 가버린다. 흐름 속에는 그러나 가지 않는 참 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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