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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화요일 - 세월호로 본 해양로봇 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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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세월호 참사 35일째다. 이번 참사는 과학계에도 많은 고민거리를 던졌다. 한달 넘게 계속되는 잠수사들의 사투(死鬪)를 지켜본 이들은 ‘언제까지 저 위험한 작업을 사람 손에 맡겨 둘거냐’고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수색 을 돕기 위해 진도로 달려갔던 과학자들도 안타까워하긴 마찬가지였다. 20일 사고 현장 투입 한달 만에 철수하는 크랩스터(Crabster )의 사례를 통해 해양 로봇 개발의 꿈과 현실을 짚어 봤다.

지난달 23일 크랩스터(오른쪽)가 스캐닝 소나로 촬영한 세월호의 모습.
수중 수색·구인작업은 숙련된 잠수사들의 생명까지 위협한다. 천안함 폭침사고 때 숨진 고 한주호 준위(왼쪽)와 세월호 수색작업 도중 목숨을 잃은 민간잠수사 이광욱씨.

“사고 발생 22일, 크랩스터가 팽목항에 온 지 17일. (중략) 이 슬픈 사고의 수습에 미력이나마 보태고자 밤잠을 설치지만 아직은 큰 힘이 되지 못하는 우리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부설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KRISO)의 크랩스터 연구 책임자 전봉환 박사. 그는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크랩스터는 물살이 거센 서해 탐사를 위해 2016년 완료를 목표로 개발 중인 로봇이다. 게(crab)와 바닷가재(lobster)에서 따온 이름처럼 6개의 다리로 해저를 기어서 움직이는 게 특징이다. 아직 테스트가 끝나지 않은 상태이지만 세월호 참사로 지난달 20일 바로 ‘실전’에 투입됐다. 그리고 나흘 뒤 크랩스터는 사람들에게 바다 밑에 가라앉은 세월호의 모습을 처음 보여줬다(본지 4월 25일자 2면). 하지만 일부 언론은 “기대에 못 미친다”고 혹평을 했다. 정말 크랩스터는 실패했을까.

 해양 로봇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원격제어무인잠수정(ROV)과 자율형무인잠수정(AUV), 그리고 크랩스터와 같은 해저보행로봇이다. ROV·AUV는 모두 프로펠러 추진 방식이다. ROV는 모선(母船)에서 케이블로 조정하는 반면 AUV는 사전에 프로그래밍된 경로를 따라 자율 항주(航走)하는 게 차이다.

 1988년 미국에선 ROV로 19세기 동부 해안에 좌초된 배에서 1억~1억5000만 달러의 금괴를 인양했다. 2011년 대서양 심해 4000m에 가라앉은 에어프랑스 447 여객기를 찾아낸 주인공도 레무스 6000이란 AUV였다. 지난 3월 실종된 말레이시아항공 370 편의 흔적을 찾는 데도 블루핀-21이란 AUV가 쓰이고 있다.

 하지만 ROV와 AUV에는 단점이 있다. 조류가 1노트(초속 약 0.5m)가 넘으면 힘을 못 쓴다. 또 상당수 ROV와 AUV가 광학카메라만 갖추고 있어 시계(視界)가 나쁘면 활동 제약이 심하다. 세월호 사고해역이 바로 그런 환경이었다. 조류의 속도가 최고 4~5노트를 넘나들고 시계는 20㎝에 불과하다. 이곳에 투입됐던 외국 ROV(미국 비디오레이, 캐나다 딥트렉커)는 무용지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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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 크랩스터는 맹골수로의 조류를 견뎌냈다. 실제 게·가재처럼 몸을 바다 바닥에 바짝 붙인 채 움직였기 때문이다. 전봉환 박사는 “머리는 낮추고 꼬리를 들어올려 유체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 다”고 말했다. 크랩스터는 KRISO의 ROV 해미래보다 약간 작지만(가로 2.42m×세로 2.45m×높이 1.3m) 몸에 받는 저항력은 약 4분의 1(유속 4노트에서 약 200㎏)에 불과하다.

 그런데 왜 좀 더 선명한 영상을 얻지 못 했을까. 크랩스터는 약 67m 떨어진 곳에서 스캐닝 소나로 세월호의 모습을 찍었다. 이 소나는 최대거리가 150m로 수평면 스캔만 가능하다. 연구팀은 1차 조사가 끝난 뒤 크랩스터에 수직방향 스캔도 가능하도록 같은 성능의 소나 한 대를 더 달았다. 촬영거리가 15m인 초음파 카메라를 보완할 수 있는 멀티빔 소나(최대거리 50m)도 추가했다. 하지만 해경은 크랩스터가 세월호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다시 허가하지 않았다. 모선의 충돌 위험 때문이다.

 크랩스터는 ROV처럼 모선에서 케이블로 조정한다. 하지만 연구진이 한 달간 빌린 배는 50t짜리 차량운반선(차도선)이었다. 이 배는 바닥이 평평해 조류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닻을 내려 배를 고정할 수 있는 포인트도 2개뿐이다. 세월호 가까이 접근했다가 자칫 조류에 떠밀리면 바로 위에서 작업 중인 잠수사들의 바지선·단정과 충돌할 위험이 컸다. 이 때문에 1차 조사도 바지선 교체로 잠깐 짬이 났을 때 진행됐다.

 더구나 크랩스터는 원래 구인·구난용이 아닌 해저 탐사용이다. 앞다리 2개를 팔처럼 쓸 수 있지만 10㎏짜리 물체밖에 들지 못한다. 세월호의 선실 문을 열거나 부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 때문에 “잠수사 투입 전 주변 해역과 배의 정보를 수집해 제공하고 조명을 비춰 잠수사들을 안내하는 역할이라면 모를까, 본격적인 구인·수색 작업은 무리”라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연구진은 세월호 접근 허가가 나오지 않자 지난 9일 세월호에서 약 500m 떨어진 해역에 크랩스터를 투입해 주변을 조사했다. 앞서 ‘세월호에서 떨어져 나온 파이프’로 알려진 물체들을 찾아냈지만 실제로는 양식장을 만드는 데 쓰인 통나무로 확인됐다. 전봉환 박사는 “모선이 크고 고정이 가능했다면 좀 더 과감한 작업을 시도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국민들이 (크랩스터에) 큰 기대를 걸었다가 더 큰 실망을 하는 듯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세월호 같은 해양참사에 쓸 수 있는 구인·구난로봇을 만들 수는 없을까. 미 국방부 산하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200만 달러(약 22억원)의 상금을 걸고 재난구조로봇대회(DRC)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와 같은 지상재난에 투입하는 게 목표다(본지 2013년 8월 29일자 B10면). 이 대회 예선전에 출전했던 한국로봇기업 로보티즈의 한재권 박사는 “화재 때 인명을 구하는 ‘소방관 로봇’을 만드는 게 1차 목표”라며 “10년 뒤쯤 상용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양용 구난로봇은 육상용보다 더 만들기 힘들다. 전봉환 박사는 “현재 기술로 당장 잠수사 역할을 하는 로봇을 만들기는 힘들다”며 “크랩스터 같은 탐사로봇, 침몰선의 문을 열 수 있는 크고 힘센 중(重)작업 로봇, 선내 수색이 가능한 소형 로봇을 각각 운용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말 제 6차 산업기술혁신계획을 발표하며 대형 사고·재난에 투입할 수 있는 ‘국민 안전 로봇’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의 DRC프로젝트를 예로 들었을 뿐 해양재난용 로봇 개발은 포함되지 않았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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