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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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박 대통령은 20일 7부 장관과 원호처장을 바꾸는 연례 개각을 단행했다. 벌써 오래 전부터 개각설이 나돌았고, 시기적으로도 보통 개각을 하던 정기 국회 폐회 직후라 예측되던 것이었다.
새 자리를 맡게된 각료들은 대개 자리를 바꾼 정도의 낯익은 얼굴들이다.
이번 개각은 동력자원부의 신설과 그 동안 몇가지 문제가 있거나 건강이 나빴던 국방·문교·총무처 장관과 공석 중인 제2무임소 장관을 바꾸거나 보충하는데 따른 연쇄 이동이었다.
원래 강력한 대통령제하에서 개각을 놓고 새로운 성격을 운위하는 것부터가 어색한 것이지만, 이번 개각의 경우는 더욱 그런 것 같다.
다만 굳이 개각의 기본 성격을 찾는다면 변화보다는 현상의 지속이라고나 할까.
구체적으로 이번 개각을 통해 남 부총리를 비롯한 경제 「팀」이 재 신임을 받았다. 경제 각료 전원이 각 내에 머물렀을 뿐 아니라, 2명의 경제 부처 차관이 장관으로 기용되었다.
또 공석 중이거나 물러난 장관들의 후임이 모두 파격이란 느낌을 주지 않을 정부·여당권의 기성인으로 채워졌다.
내년이 대통령 선거의 해라는 것을 감안하면 선거라 해서 「템포」를 바꾸지는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헤아릴 수도 있겠다.
개각의 정치적 성격은 여하간에 상당수의 장관이 바뀌고 나면 뭔가 청신감을 기대하게 되는 건 인지상정이다.
국가 정책의 기본은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 해도 대통령을 보좌하고 기본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각료들에게는 적지 않은 재량의 여지가 있다.
새 자리에 취임하는 각료는 물론, 유임된 각료들도 이번 개각을 계기로 좀더 국민에게 절실한 것이 무엇인가를 파악하고 이를 국정에 반영하는데 더욱 분발이 있기를 기대한다.
우리 경제는 올해 수출 1백억「달러」의 고지를 넘어섰고, 쌀 수확량도 4천1백70만 섬이란 미증유의 대풍이었다.
그러나 금년 하반기부터 시현된 국제 경제의 둔화와 미-구-일의 무역 전쟁으로 인한 보호 무역주의의 심화 가능성은 해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는 적지 않은 도전이다. 또 해외 부문에서 주도된 통화량의 팽창에 따른 「인플레」 경향은 금년에 이어 내년의 물가 안정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따라서 경제「팀」은 이번의 재 신임을 실적에 대한 상훈이라기 보다는 결자해지 기회의 부여로 알고, 좀더 분발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안보 태세는 주한미군의 철수 계획을 감내할 수 있을 정도로 개선되어 가고 있다. 우리가 빠른 시일 안에 달성해야 할 자주 국방은 무력과 국민의 단합된 사기의 총합으로 이뤄지는 만큼 민심의 수습과 화기로운 단합에도 각별한 배려가 있어야 하겠다.
그런 뜻에서 새 내각은 97회 국회에서 채택된 「시국에 관한 대 정부 건의」를 실현할 수 있는 여건 마련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벌써 1년 이상 한미 관계를 냉각시켜온 박동선 사건을 조속히 매듭지어 한미 관계를 새로운 차원에서나마 정상화시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 같다.
한미간의 관계 양식이 어떻게 조정되어야 하든, 한미 관계에는 이해를 같이 하는 면이 무척 많다.
그렇다면 한미 관계의 불협화는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이로울 턱이 없지 않겠는가.
개각에 붙여 각료들이 지혜롭게 당면 문제를 해결하여 국정에 새 바람을 불어넣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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