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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주 여사의 궁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언제부터인가 귀주머니·염낭·향낭·베갯모 등을 수놓아 장롱 속에 차곡차곡 모아 두는 버릇이 생겼다. 그랬다가 집안에 혼사가 있다든가 정초에 아이들이 세배 왔을 때 한두개씩 내주면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모른다. 요즘엔 그런 물건이 흔치 않아서 더욱 귀하게 아낌을 받는 것 같다.
6·25동란으로 남편 (민경대·공무원으로 납북)을 잃고 유일한 낙이 수놓는 일이 되었다. 외동딸을 키우는 집안 이어서 늘 한적하고 시간이 많았다. 수틀을 잡고 앉으면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 잊을 수 있었다. 빛깔을 맞춰 한땀 두땀 뜬 색실이 한폭 그림으로 조화되는 걸 보노라면 어느새 희열에 감싸 이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무 때나 혼자 있는 시간이면 수틀을 잡고 앉는게 습관화된 것이다.
그러기를 5년-.
처녀시절에 내 주변에선 궁궐의 수방 내인들을 자주 접촉할 기회가 있었다.
최 상궁은 그때 여러 가지 궁수의 기법을 가르쳐준 스승인 셈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수본이나 염낭의 실 틀들은 그 무렵부터 본보기 삼아 간수해 오는 물건이다. 동란 중에 흙 묻고 찢어지곤 했지만 아주 없어지지 않은 것만이 다행이다.
그것은 기억을 더듬는 소중한 실마리가 됐기 때문이다.
궁궐의 수는 우선 겹수로 놓는게 특징이다.
시체말로 심을 박아 밑수로 삼고 그 위에 원색의 색실을 놓는다. 그리고 반드시 금사를 둘러 화사하고 또렷하다.
쌍학의 둥근 침은 남성용 베개 마구리고 암수가 새끼 7마리를 거느린 구봉침은 여성용이다. 낮 베개에는 수면 강령 부귀다남의 글자를 넣고, 주머니에는 대체로 연지 원앙의 그림을 넣는다. 궁중 수에는 그런 격식이 까다로웠는데 지금 생각하면 다 배워 둘걸 하는 아쉬움이 적지 않다.

<54·숙명여학교 졸·서울 성북구 보문동 6가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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