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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노파 살해범 이헌삼 검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서울 도봉구 수유2동 532의51 박봉원 씨(59) 집 두 노파살해사건의 범인 이헌삼(22)이 범행 73일 만인 5일 상오6시30분 서울 마포구 망원동 399의5 송「도너츠」집(주인 오명섭·27)에서 검거됐다.
검거당시 이헌삼은 양어깨에 흰줄 3개가 있는 검은색 털「잠바」에 회색바지를 입고 있었다.
이헌삼은『잡히고 나니 오히려 홀가분하다. 죄의 대가를 달게 받겠다』며 가끔 흐느낌 속에 범행과정과 도주경위 등을 순순히 자백했다.
이헌삼은 사건 이틀전인 21일 근무지인 경북 포항 태극당 제과점에서 다른 직장을 찾아 서울로 올라왔으나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돈이 떨어져 2일 동안 노숙하면서 굶었다.
상경 다음날인 22일 수유동 박봉원 씨 집 뒷산에서 하룻밤을 보낸 이헌삼은 동네를 돌아다니다 박 씨 집 앞에서 허기에 지쳐 졸도했다. 1시간만에 깨어나 박 씨 집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연 가정부 이순례 씨(58) 에게 밥과 돈을 달라고 요구했으나 이 씨가『사지가 멀쩡한 사람이 왜 얻어먹으러 다니느냐』고 말해 집안에 있던 망치를 들고 위협하자 이 씨가『강도야』하고 고함을 지르며 지하실로 달아났다.
이헌삼은 가정부 이 씨를 쫓아가 망치로 머리통을 때려 숨지게 한 후 집안에 더 사람이 없는 줄 알고 1층 현관으로 들어갔다.
이헌삼은 주인 박 씨의 어머니 정종소 할머니가 마루에 앉아 있어 다시 밥을 달라고 요구했으나 정 씨가 말을 알아듣지 못해 안방에 들어가 장롱 등을 뒤졌다.
이때 정 씨가 달려들자 이헌삼은 정 씨의 옆구리와 머리를 때리고 실신시킨 후 머리를 마루에 짓눌러 숨지게 한 다음「카메라」와 현금 등을 챙겨 달아났다.
이헌삼은 범행 후「버스」편으로 영등포에 도착, 무허가 코주부여인숙에 투숙했었으나 주인 조덕현 씨(31)의 부인 주경애 씨(31)의 신고로 영등포경찰서 역전파출소에 붙잡혔다.
이헌삼은 당직경찰관이 잡혀 온 10대 소년을 심문하는 사이「카메라」와 피묻은「잠바」등을 파출소에 둔 채 정문으로 달아났다.
걸어서 제1한강교를 건넌 이헌삼은 교각 밑에서 밤을 새운 후 24일 상오10시쯤 용산 역에서 대전행 완행열차를 타고 대전으로 갔다.
역 앞에서 취직을 시켜 주겠다는 이 모 씨(38)를 만나「아시아」제과점에 취직한 이헌삼은 다음날인 25일 신문을 보고 자신이 범인으로 수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불안해 종업원들의 현금 6천 원과「세이코」시계 1개를 훔쳐 10월12일 부산으로 피신했다.
이헌삼은 12일 밤을 부산 역 대합실에서 보내고 일자리를 찾아 헤매다 17일부터 부산시 부산진구 부전동 254 미미 제과 점(주인 장병요·51) 에 월 3만원씩을 받기로 하고 취직했다.
이헌삼은 여기서 알게 된 제빵 기술자 정진욱 씨(27)를 따라 온천동 서울제과·광안동 송죽제과·동래구 구산3동 연미당 제과점 등을 10여일 간격으로 전전하다 지난달 26일 종업원을 구하러 내려온 연미당 제과점 주인 친구인 오명섭 씨를 따라 오 씨가 경영하는 서울 마포구 망원동 399의5 송「도너츠」집에 월 5만원씩 받기로 하고 취직했던 것.
이헌삼은 그동안 대전에서 김원태 군(20·대전고등공업기술전문학교 5년B반)의 학생증과 부산에서 훔친 성성권 군(18) 의 주민등록증으로 김·성군의 행세를 했다.
이헌삼은 경찰에서 두 할머니를 죽일 생각은 없었으나 2일 동안이나 굶은 데다 가정부 이 씨가 밥 좀 달라는 요구를 냉혹하게 거절해 순간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특히 정 씨는 죽일 생각이 없었는데 신문을 보고서야 뒤늦게 정 씨가 죽은 줄 알았다는 것.
이헌삼은 그동안 도망 다니며 몹시 불안해 파출소 앞에 붙어 있는 자신의 지명수배벽보를 보았으나 한번도 검문검색을 받아 본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헌삼은 이제 붙잡혀 죄를 달게 받겠다며 차라리 홀가분한 기분이라고 울음을 터뜨렸다.
범인 이헌삼은 13세 때 고향인 경북 문경군 농암면 농암리에서 국민학교를 나왔으나 집안이 가난해 큰아버지 집에서 나무를 해주며 살다 14살 때 혼자 무단상경, 구두닦이·식당종업원·신문팔이 등으로 전전했었다.
범행 전까지는 포항 태극당 제과점에서 종업원으로 근무하다 주인이 보충교육을 빠지기 위해 쓰라고 준 돈4만원을 교육도 못 빠지고 써 버려 다른 직장을 찾기 위해 상경했었다.
이헌삼은 부모와 형제가 있으나 자신이 서울로 올라온 후 가족과 소식이 끊겨 지금은 어디서 사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경찰은 이헌삼을 강도살인·절도 등 혐의로 구속하고 이헌삼이 범행 후 대전과 부산 등에서 훔친「세이코」시계 1개·주민등록증·학생증 등을 증거물로 압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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