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사건의 책임 어디에 있나|고속·대형사고의 사회적 안전장치 결여|황성모<충남대 교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중간에 있는 나라 「이란」의 수도에서 벌어진 한국-「이란」축구시합의 우주중계를 보느라 정신을 잃고 있던 우리 온 국민들의 뒤통수에서 25t의「다이너마이트」가 터졌다. 이번에는 이리에서 그 폭발사고가 일어났지마는 언제 또 용산역에서 또는 부산역에서 그와 같은 사고가 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사실상 우리 모두가 잠재적으로 이러한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경고를 받은 것과 같다. 신문이나 TV에서 보여주는 폭발현장사진은 우리들로 하여금 일시에 6·25때로 돌아간 착각마저도 안겨주었다. 우리모두가 살아있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생각해보면 축구시합의 우주중계방송이나 「다이너마이트」폭발사고는 현대과학기술의 산물이다. 전자의 경우는 그것이 우리 인간에게 실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며 후자의 경우는 파괴적으로 작용했던 경우다. 원래 인간들이 과학기술을 발전시킬 때 그것은 자연을 극복(착취)하는 방법이라는 의미를 가졌다. 인류발생이후 오랫동안 자연의 횡포 밑에서 살아 왔다고 생각했던 인간들이 과학기술로써 자연을 통제할 수 있게되자 인간들은 자연인에서부터 공작인(homo faber)으로 변한 것이다. 자연을 극복했다고 생각했던 인간들의 자부심이 대단했을 것이라는 점을 쉽게 이해할 수가 있다

<사고재발 막을 보장 없다>
그리고 자연을 지배하는 기술을 가진 사람만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경제발달의 내재적 동력이 되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찬란(?)한 길을 가기 위해서는 인간은 어떤 숙명적인 원 의무를 감당해야 했던 것이다. 그것은 끝없이 자기가 「공작」해놓은 일을 점검하고 통제하고 유지해 나가는「파우스트」적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의무였다. 원래 신과 자연에서부터 자기해방을 한 현대인간의 원형은「호모·에코노미커스」가 아니고「파우스트」적 인간이었다. 그것은 자기의 공작자에 대한 책임과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을 동일시하는 인간이어야 했다는 것을 말한다.
이제 우리사회는 공작적 차원에서는 상당하게 양적으로 성장했다. 이것을 근대화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마는 오히려 경제성장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우선 물자생산이 증대하고 물동이 량과 빈도에서 증대했고 도시인구 집중현상이 일어났고 공업단지도 여러 군데 생겼고 교통량도 늘어나 고속도로나 항해공로도 증가하고 「호텔」·「빌딩」·「아파트」가 인구집중현상과 비례해서 대형화하였다. 형태상으로 보면 한국사회는 과연 현대사회가 가지는 여러 측면들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인간의 공작물들이다. 결코 자연적 산물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사고란 공작물이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나서 사물법칙을 따라서 작용하는 현상이다. 그리고 그때 통제라는 것은 공작물자체가 기술적 산물인 이상에는 기술적 통제를 의미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기술적 통제를 어떻게 하는가는 인간에 의해서 정해진다. 현대공업사회가 안전사회가 될 수 있는가 없는가는 바로 인간이 어떠한 기술적 통제를 하고 있는가 없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인간통제 벗어나면 악마로>
유감스러운 일이지마는 우리사회의 기술적 통제는 「파우스트」적 인간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원래 우리 손으로 만들어 낸 것들을 안전하게 관리한다는 것은 기술적 통제에 속하는 일이지만, 안전관리란 원칙적으로 편재적으로 기능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직접적으로 이해관계가 있는 일에 따라서 안전관리의 집중도에 차가 생길 수는 없다는 말이다. 인간적 과오가 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지마는 일단 사고의 원인이 영리적인 동기에서 발생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제도적인 문제다.
안전관리를 위한 법들도 많다. 그러나 법 자체가 사고를 막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법을 지킴으로써 안전이 보장되는 것이다. 왜 안 지켜지는가? 돈이 들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법 때문에 공해방지시설을 갖추어 놓고서도 가동하지 않는 일도 있다. 역시 돈 때문이다. 이의 하주는 단 한사람에게 25t의「다이너마이트」와 기타 뇌관을 습재하여(위험도가 지극히 높은 기술적 관리법이다)수송의 책임을 맡겼다.

<적은 돈 아끼려다 큰 들어>
당사자는 이러한 일을 7년이나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당국에 신고된 운송책임자는 다른 사람이었다고 한다. 실로 형식적인 안전관리다.
결국 인물비를 줄이기 위해서 안전수송이 소홀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하주 자체가 막대한 손해를 봤을 뿐만 아니라 이리라는 우리 공동체의 일부를 파괴한 것이다.
우리가 만들어낸 공업 기술적 공작물은 인간의 끈임 없는 애무(안전관리)를 받지 않으면 그 노여움을 폭발시킨다. 그것이 구조적 결함에서 올 때 전쟁보다도 무서운 것이다. 대내적 차원에서는 사회적 안전은 단방에서 보장되지마는 대내적 차원에서는 사회적 안전은 안정관리의 철저화 밖에는 기대할 수 없다. 안정관리에 투자하지 않고서는 거시적으로는 업체에도 손해가 되지마는 안전사회에의 길 또한 먼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