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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선장 "사고 순간 선원들만 살아야겠다 생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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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A급 지명수배가 내려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장남 대균씨의 밀항에 대비해 15일 인천항에서 해양 경찰 대원들이 대균씨의 신상정보가 적힌 전단지를 들고 순찰하고 있다. A급 지명수배는 체포 영장이 발부된 피의자가 도주 내지 잠적한 경우에 내려지며 발견 즉시 체포된다. [뉴스1]

세월호 이준석(69·구속) 선장을 포함한 선원 15명이 440여 명의 승객을 퇴선시킬 경우 자신들은 후순위로 밀린다는 사실을 알고 퇴선 방송 없이 먼저 탈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선장은 승객 구호조치를 않고 도망친 ‘부작위에 의한 살인’ 혐의의 동기에 대해 “선원들만 어떻게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본부장 안상돈 검사장)는 15일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 승객 구조의 책임이 가장 큰 이 선장과 강원식(42) 1등 항해사, 김영호(47) 2등 항해사, 기관장 박기호(58)씨 등 4명을 광주지방법원에 구속기소했다. 광주지법은 이 사건을 형사11부(부장 임정엽)에 배당했다. 합수본부는 확인된 희생자 단원고 정모(16)군 등 284명에 대한 살인 혐의 등을 적용했다.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실종자 20명은 피해자에서 제외했다.

 구조된 승객 152명에 대한 살인미수, 업무상 과실 선박매몰, 수난구호법·선원법 위반 혐의도 추가했다.

 또 3등 항해사 박한결(25·여)씨와 당직 조타수인 조준기(55)씨도 구속기소했다. 이들은 사고 당일 복원성 문제로 5도 이상 조타기를 돌리면 침몰 위험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15도 이상의 대각변침으로 배를 침몰시키고 구호조치 없이 탈출한 혐의(특가법상 도주선박죄)를 받고 있다.

 이 선장에겐 최고형이 살인인 살인죄가 무죄가 날 경우를 고려해 최고 무기징역인 도주선박죄도 예비적 죄명에 추가했다. 검찰은 1등 기관사 손지태(58)씨를 포함해 나머지 선원 9명도 최고 징역 45년인 유기치사·치상죄를 적용해 함께 구속기소했다.

 합수본부 관계자는 이 선장 등 4명에 대한 살인죄 기소에 대해 “이들은 해경 진도관제센터(VTS)에서 30여 분간 ‘구명링을 착용시켜 승객을 탈출시키라’는 지시에도 ‘방송·선내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거짓말을 하고 9시37분 교신을 끊고 먼저 퇴선해 살인죄가 성립한다”고 밝혔다. 또 “선원들이 탈출한 9시38분 3층 갑판이 침수가 안 된 사실도 확인돼 퇴선 방송만 했다면 승객 전원이 해경과 인근 어선 등에 쉽게 구조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검찰 조사 결과 세월호 선장과 선원 8명은 지난달 16일 오전 8시52분 조타실에 모여 탈출을 모의했다. 선박의 2층 높이인 침수한계선까지 물이 차오르자 배를 버리기로 했다. 선원들은 여닫이 방식인 선박의 문들이 물에 잠길 경우 수압 때문에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 선장 등은 당시 옷이나 무전기를 가져오기 위해 자신의 선실을 오가는 동안에도 승객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선체 곳곳에 방송 설비와 전화기, 비상벨, 무전기 등이 있었지만 아무것도 사용하지 않았다. 수차례 승객 탈출을 지시한 진도 VTS와의 교신 내용도 모두 외면한 채 거짓 교신을 했다. 일부 선원은 구조함이 나타나면 쉽게 빠져나가기 위해 소방호스를 몸에 묶은 채 대기한 사실도 새로 드러났다.

 선원들의 어처구니없는 변침도 사고 원인으로 확인됐다. 사고 당일 오전 8시48분. 세월호 조타수 조준기씨는 조타기를 135도에서 150도가 넘게 급격히 꺾었다. “조타각도를 140도로 맞춰라”라는 3등 항해사 박한결씨의 지시보다 10도 이상 더 꺾었다. 당시 운항 중이던 항로는 조류가 세기로 이름난 맹골수도(孟骨水道)여서 5도 이상 변침을 하면 안 되는 곳이었다. 급격한 변침에 따라 오른쪽으로 급히 방향을 튼 세월호는 좌현 쪽으로 급속히 기울기 시작했다. 정상적인 배라면 선체가 다시 꼿꼿하게 서야 하지만 증축 과정에서 복원성에 문제가 생긴 이 배는 결국 원래 상태로 돌아오지 못했다.

 적정량을 크게 초과한 화물량과 불량한 화물 선적도 배를 침몰시킨 요인이 됐다. 사고 당시 세월호에는 컨테이너와 차량 등 2142t의 화물이 실려 있었다. 한국선급이 허가한 적정 적재량인 1077t보다 두 배가량 화물을 많이 실은 것이다. 반대로 선원들은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는 기준량인 1565t의 절반도 안 되는 761t만 채웠다.

 무기력한 구조활동을 펼친 해양경찰에 대한 수사도 본격화됐다. 검찰은 이날 “앞으로 구조 관계자 등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통해 상응하는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정효식 기자, 목포=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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