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무쌍한 전화번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오늘과 같은 정보산업시대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전화는 이제 하나의 생활필수품으로 막중한 비중을 차지한다.
국가산업발전과 사회개발에 있어서도 전화통신의 역할은 다른 어느 간접자본과도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한층 크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산업이나 사회의 발달이 빨라질 수록 그만큼 전화의 수요도 급증하게 된다.
해방당시 4만4천대에 불과하던 전화는 현재 1백40만대로 늘어나 양적으로도 급팽창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수요의 증가와 양적 확대에 비해 전화의 질이나 「서비스」는 좀처럼 개선돼 가는 기미를 느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전화를 둘러싼 불평과 불만은 오히려 가중돼 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또 전화번호가 너무 자주 바뀌는 바람에 이용자들이 소통에 곤란을 겪는 등 새로운 불편을 겪고 있다.
가입자의 전화번호가 전화국의 신설이나 수용변경에 따라 그 변경의 필요성이 생긴다는 것은 체신행정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특정전화국의 수용시설이 포화상태에 이르면 넘치는 부분을 신설국으로 옮겨야 하고 대대표전화와 같은 교환방식을 채택하기 위해서는 국번이나 번호의 변경이 불가피 하다는 것을 모르는바 아니다.
그렇더라도 최근의 경우처럼 불과 10개월 사이에 서울시내 전체가입자의 35%에 이르는 전화번호가 그것도 몇 번씩이나 잇따라 변경되고, 이를 모든 전화이용자에게 알리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한마디로 체신행정의 맹점과 「서비스」 정신부재를 대변하는 증거라 아니 할 수 없다.
전화번호란 상공업에 있어서는 간판이나 옥호에 못지 않게 거래상 신용이나 전통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상호 연상작용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요즘처럼 변화무쌍한 전화번호의 변경은 상거래의 안정성을 해치고 장기간에 쌓아올린 영업권에 대한 일종의 침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혼선과 오접, 잡음 등으로 전화이용자는 짜증이 나는 판인데 전화번호의 연중무휴 일방적 변경으로 이용자들로 하여금 골탕을 먹게 한다는 것은 가입자를 외면한 일방행정의 횡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같은 현상은 말할 필요도 없이 전화사업이 시설개선이나 공급확대를 위한 재투자를 하지 않고 임기응변 식의 소극적인 대응책만 일삼고 있는데서 빚어지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교환방식을 ITT기종과 같은 전자교환방식으로 바꾸고 선진외국처럼 전국적인 지역번호와 함께 국번호 및 가입자고유번호를 나란히 붙여쓰는 전국 단일교환방식을 도입한다면 잦은 번호변경에 따른 현재와 같은 혼란과 불편은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나라가 세계에서도 가장 비싼 전화가설비를 받고 그로 인한 전화사업의 엄청난 흑자를 생각한다면 이같은 새로운 방식의 도입이 불가능하다고만 볼 수 없다. 그런데도 가입자에게 일방적으로 불편을 주는 현재의 낡은 방식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전화사업의 흑자를 공급확대나 「서비스」 개선을 위해 재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화사업분야의 막대한 흑자를 다른 분야로 빼돌리고 수익자가 돼야할 전화가입자는 푸대접을 받고 있는 꼴이다.
수용자 부담원칙에 따라 전화수입이 제대로 전화사업에 재투자되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은 전화난과 가입자의 불편은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체신당국은 이와 같은 가입자의 불편과 「서비스」부재현상을 해소하고 공기업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 하도록 성의 있는 대책을 강구해주기 바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