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적 방법론 도입은 오히려 장려할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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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다음 글은 『오늘의 문단 진단』「시리즈」 첫회 서강대 이재선 교수의 『문학 비평은 제구실을 다하고 있는가』 (10월28일자)에 대한 문학 평론가 김주연씨의 반론이다.
문학 비평의 기능에 대한 이재선 교수의 견해 ①문학 비평은 근본적으로 문학 작품의 현상에 대한 전문적 독서 행위다 ②서구의 비평 방법론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으나 이것이 반드시 긍정적인 의의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 ③요즈음 비평은 특정한 작가론이나 작품론에 너무 기울음으로써 폭넓은 시대 인식 대신 미분화되어 가고 있는 느낌이다 ④양산과 표절 등 비평 윤리의 소실이 일부에서나마 눈에 뛴다 ⑤월평 등에서 비평가가 흡사 작가의「세일즈맨」 노릇을 하고 있는 인상이 있다는 등으로 요약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이러한 지적은 비평의 본질과 한국의 문학 비평 현실이 지닌 좋은 점, 나쁜 점을 골고루 포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비평 현장에 있는 현역의 한 사람으로서는 다음과 같은 사정의 이해에 보다 진지한 관심이 있기를 바라고 싶다.
첫째, 서구의 비평 방법론 응용에 대한 생각인데, 이 교수를 비롯한 일부 문단의 견해가 이를 『무절제한 도입』이라고 보는 것은 재고되어야 할 태도다.
현재 우리 평단에는 구조주의·「러시아」 형식주의·심리주의 등의 방법론과 함께 「루카치」「콜드만」「야우스」 등등의 이름이 일견 무절제하게 거론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론부터 말해서 이는 비난되어야 하기 보다 오히려 장려되어야할 일이라고 본다. 나 역시 이 교수 못지 않게 『그러한 방법이 이루어 질 수 있었던 전통적 배경에 대한 아무런 이해도 없이 단지 그 신기성에만 이끌려 가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지만 그 가능한 역진성 때문에 지식자체의 섭취를 거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과거 인상주의 위주의 비평 구조가 지녔던 지적 빈곤의 한 반작용이라 할 수 있다. 비평은 지식 그 자체는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어떤 「도그머」, 혹은 자세 그것만도 아니다.
우리의 비평은 비평의 기능에 대한 근대적 자각의 전통이 매우 짧기 때문에 보다 많은 지적 영양이 필요한 형편이다.
사실 지금도 얼핏 보기에 다양한 방법론이 있어 보이지만 실제 비평에 그것이 살아 있는 원리로서 적용되고 있는 경우란 극히 드물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의 원산지가 어디이든간에 이를 받아들여 우리 창작에 활용해 봄으로써 과연 어느 것이 우리에게 맞는 것인가를 알아내는 일이다.
다음에 분명히 해두어야 할 점은 비평의 궁극적인 목적은 한 사람의 작가론을 통해서 비로서 완성된다는 점이다. 한 사람의 창작가는 시대와 현실에 동떨어진 보 잘 것 없는 개체가 아니라 그 자신 속에 시대와 현실을 포함하고 있는 하나의 세계라는 것이 문학의 인식이다. 비평은 작가를 통해서, 그의 작품을 통해서 그가 살고 있는 시대와 현실, 그리고 거기에 반응하는 인간 정신으로서의 높이와 넓이를 읽어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론은 미시적인 것, 일반론은 거시적이라는 생각은 옳지 않다.
끝으로 월평의 광고 기능적 성격에 대해서 말하자면, 결국 비평가의 양식이라는 말 밖에는 달리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구태여 월평의 일부인 이상 비평가는 그가 평가하고자 하는 작가에 대한 관심을 표명할 수 밖에 없다. 그 결과 만약 문학 비평 아닌 광고의 인상을 주었다면 비평가가 선택한 언어가 책임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 것은 그 비평가의 능력에속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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