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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규 기자 종군기] 베테랑 戰士도 "너무나 힘든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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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일 오후 2시(현지시간) 따가운 햇살 아래서 즉석전투식량(MRE) 봉투를 뜯었다. '비프 라비올리'라고 적혀 있다. 국물이 없는 그저 뻑뻑한 고기 덩어리다. 무감각하게 씹어 삼킨다.

클라이맥스가 없는 전쟁이 계속되면서 많은 이가 지쳐가고 있다. 신경가스 경보에 반응하는 병사들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황토색 흙먼지를 뒤집어쓴 남녀 병사들이 진흙이 지저분하게 묻은 군복 차림으로 군화를 끌며 힘들게 걷는다.

그러나 그들 사이를 활발히 움직이는 키작은 민간인이 있다. 미 5군단 16지원단 181대대 안전담당 프레드 미첼(49.사진)이다. 1m60㎝. 동양인 기준으로도 무척 작은 키다.

그러나 그 작은 몸에 전쟁의 온갖 노하우가 농축돼 있다. 전쟁에 관한 한 그는 '프로'다.

미첼은 1971년 해병 2사단에서 군생활을 시작했다. 74년 상병으로 제대한 뒤 사회생활을 하다 83년 군속으로 육군에 다시 들어갔다. 미첼은 그때 전문분야를 정했다.

핵.화생방.미사일 등 각종 대량살상무기(WMD)를 다루는 기술을 익혔다. 노력 끝에 그는 나이키.랜스 미사일.155㎜ 대포.8인치 자주포 등을 조립.해체할 수 있는 자격을 땄다.

90년에 한국에도 잠시 근무했다. 남북 비핵화 공동선언에 따라 군산기지에서 핵무기를 철수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2개월이 걸렸다. 그는 "철수된 핵무기는 15년에 걸쳐 파괴된다"고 했다. "몇 개였느냐"고 묻자 "비밀"이라며 웃는다.

미첼은 민간인이지만 임무는 어느 병사 못지않게 중요하다. 181대대는 5군단에서 유일한 전략적 수송부대로 HET.PLS.POL 트럭 등을 갖추고 있다.

HET는 탱크를 수송하는 장비다. M1 에이브럼스 탱크가 한 시간 움직이려면 기름값이 2천1백달러나 든다. 브래들리 장갑차는 9백달러다. 이에 비해 HET는 2백달러에 불과하다.

그러니 부대가 이동할 때 탱크가 직접 달리는 것보다는 트럭으로 옮겨야 한다. PLS는 컨테이너, POL은 5천갤런의 연료를 수송한다. "181대대가 없으면 전쟁을 못한다"는 얘기는 과장이 아니다.

HET에 탱크를 실으면 무게가 1백10t까지 나간다. 이렇게 무거운 수송차량이 포장도 제대로 안된 사막길을 달리려면 보통 기술과 주의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전쟁 경험이 없는 젊은 군인들은 제대로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그 공간에 키작은 미첼이 우뚝 서 있다. 그는 181대대를 따라 코소보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등을 휘젓고 다녔다.

"전쟁만 나면 빛을 보는 전쟁 전문가"라고 꼬집자 미첼은 반박한다. "난 군대가 좋았어. 다양하잖아. 젊은이들과 일하는 것도 좋았지. "

그런 그도 이번 전쟁에서는 기운이 달리는 모양이다. "모든 전쟁이 고통스럽지만 이렇게 힘든 전쟁은 처음"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여기저기 게릴라가 출몰하는 불안한 사막을 밤을 새우며 달려야 하고, 사막의 모래폭풍이나 먼지와도 싸워야 한다.

"이번이 마지막 전쟁이라면 좋겠어. 이젠 두 손녀와 조용히 쉬고 싶어."

그는 먼지가 가득한 마른 하늘로 눈길을 던졌다.

이라크 나자프 인근 캠프 부시매스터=안성규 종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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