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빈 「그룹」전 많다|앞다퉈 열리지만 성격 모호한 것 수두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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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술계는 최근 무수한 「그룹」전의 명멸로 흡사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하고 있다. 현재 미협에 등록된 단체는 회화·조각·서예에 걸쳐 37개 단체. 지난해 한국미술연감에 수록된 단체만도87개다. 그러나 실제「그룹」의 명칭을 띠고 공동의 발표전을 갖는 경우는 1백수10개가 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최근에 두드러진 발족단체로는 동양화단의 연로 작가를 포함하여 이른바 재야작가들로 구성되고 있는 대한미술원(대표 김청강)이 곧 창립 전을 갖는다. 또 구상계열의 유화가로 구성되는 형상회(대표 장두건)도 미구에 출범할 것을 서두르고 있다.
이런 규모 큰 단체들은 비교적 동인의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몇 명이 발표전을 갖는 편법으로 동인전을 갖는다던가 국제관계의 모임, 학교동창이나 출신지역끼리의 모임, 특히 개개대학교수전이나 화랑 초대형식의 「그룹」전 등 미묘하고 잡다한 「그룹」들은 그 나름의 아리송한 문제점을 안고있다.
미협에 등록된 단체는 대체로 10명 이상이 조직적인 임원을 두고 있는 경우에 한하고 있다. 가령 동양화의 백양회, 서양화의 구상전과 AG, 조각의 현대공간회, 서예의 동방연서회 및 수채화가회나 여류화가회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움직임을 보면 회화분야에서 「앙데팡당」「무한대」「평면」「칠월」「백토」「35/128」「ST」「제3」「이상회」「앞봄」 등 낮선 이름들이 허다하다. 공예분야에선 언제 생겼다가 없어지는지조차 분간키 곤란하며 서예에 있어서는 개중엔 단체로서의 성격이 뚜렷하지만 서숙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의 이른바 문하생전인지 전혀 판가름 안될 경우가 많다.
이러한 「그룹」전의 난립은 몇 가지 한국미술계의 난맥상을 한마디로 설명해 주는 것 같다. 즉 미술가가 꾸준한 제작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대외적 활동을 통해 명성을 얻고 그런 명성을 통해 미술계에서의 지반과 파벌을 형성한다는 점이다.
오늘의 한국미술계는 평가기준이 서있지 않는 상황에서 군웅이 할거하는 소용돌이의 과도기.
작품의 내용에 앞서 사회적 명성과 활동의 폭에 의하여 개개 작가를 저울질한다. 더구나 최근 미술품이 고가로 매매되고 화랑(화상)이 우후죽순 격으로 신설됨에 따라 발표욕을 한층 부채질하고 있다.
또 교직에 있는 작가에 있어서는 전시회를 갖는 게 곧 연구 실적으로 대치되기 때문에 우스꽝스런 「그룹」전까지 빚어내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미대교수 작품전」이란 명칭의 단체전.
임시방편으로 모인 이런 「그룹」전에 이념과 방향이 있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 작가가 여러 「그룹」에 관여하고 있는 것도 상례이다.
최근 미술계의 일부에서는 굳이 교직이라든가 단체활동 같은 작가외적 활동을 사양하면서「아틀리에」로 들어가 제작에 몰두하려는 경향이 있는 반면에 「그룹」전의 난립은 미술계의 석연 찮은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이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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