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포럼] 맨큐 對 크루그먼의 전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중동에서는 이라크전쟁, 동남아에서는 괴질과의 전쟁, 그리고 국내에서는 오보와의 전쟁으로 난리인데 또 전쟁 얘기냐고 짜증내실 분도 있겠지만 오늘 주제는 천재 경제학자들간의 부드럽고 생산적인 싸움에 관한 것이다.

당사자는 미국 하버드대의 맨큐 교수와 프린스턴대의 크루그먼 교수다. 둘 다 15년 전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경제학계의 신동(whiz-kid) 8명을 선정했을 때 뽑혔던 사람들이다.

그에 앞서 1982년 레이건 정부 때는 경제자문위원회(CEA)의 펠드스타인위원장 밑에서 두사람이 스태프로 함께 일한 적도 있는 사이다.

올해 50세가 되는 크루그먼은 외환위기 이전에 한국 등 신흥공업국들의 성장한계를 지적한 바 있고 최근에는 뉴욕 타임스의 고정 칼럼으로 국내에서까지 명성이 자자한 인물이다.

반면 지난 2월 말 부시 대통령의 새 CEA위원장으로 지명된 맨큐는 다섯살 아래로 그전에는 베스트셀러가 된 경제학 교과서의 필자로 더 잘 알려져 왔다.

전운은 교과서에서부터 감돌기 시작했다. 1998년에 출간된 맨큐의 '경제학원론(Principles of Economics)'이 대성공을 거두자 지기 싫어하는 크루그먼이 도전에 나선 것이다. 난삽한 경제이론을 쉽게 풀이하는 데 탁월한 소질을 가진 그는 수년 전 출판계약을 맺고 경제원론 집필을 시작했다.

계획대로였다면 지난해쯤 책이 나와 이미 일전이 벌어졌어야 했지만 칼럼 기고로 시간을 뺏기다보니 출간이 늦어졌고 초조해진 크루그먼은 부인인 로즈 웰즈까지 공동 저자로 끌어넣었다. 지금 전망으로는 올해 말쯤 가야 경제원론들간의 한판 승부가 전개될 것 같다.

그보다 앞서 부시 정부의 경제정책, 특히 감세정책을 두고 두사람 간의 쟁론이 본격화할 것 같은데 맨큐가 보수적인 반면 크루그먼은 진보적이기 때문이다.

맨큐의 보수성은 요즘 한.미 양국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상속세에 관한 입장에서 두드러진다. 그는 상속세가 낭비하는 사람보다 근검.절약하는 사람을 박대하는 불공평한 제도라고 보고 폐지를 주장한다.

닷컴 기업을 일으켜 2천만달러씩 재산을 모아 은퇴한 두사람의 경우를 비교해 보자. 한사람은 국내외에서 호사스럽게 살다 마침내는 의회 출마까지 해가며 모은 재산을 탕진한 반면, 다른 한사람은 저축했던 돈을 그대로 후손에게 넘겨준다고 가정하기로 한다.

미국 세법에 따라 낭비가는 한푼도 상속세를 물지않는 반면 절약가는 재산의 50%를 정부에 납부해야 한다는 것이 맨큐가 보기에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절약가는 자본 축적, 기술 발전, 생산성 향상이라는 큰 공적을 세웠는데 어떻게 높은 세금을 물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

분배문제 때문에 부자에게 세금을 물려야 한다면 상속세로 할 것이 아니라 소득세.소비세 또는 재산세 같은 수단들이 활용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와 달리 크루그먼은 상속세 폐지를 포함한 부시의 대규모 감세안이 부자들의 배만 불릴 뿐이며 국가재정의 파탄과 경제 침체를 불러온다고 경고해 왔다.

맨큐의 임명 소식을 듣자 훌륭한 학자이긴 하지만 어려운 때 힘도 없는 자리로 들어가는 것을 동정한다고 딴죽을 걸었다. 맨큐의 반격이 기대된다.

그는 원론책 초판에서 레이건의 감세정책 조언자들을 돌팔이(charlatan) 경제학자로 매도한 적이 있는데 자신을 이들과 어떻게 차별화할지도 궁금하다(2001년의 책 2판에서는 이 부분이 삭제되었다).

우리로서는 두 학자 간의 경쟁과 논쟁이 생산적으로 전개되어 경제학계를 풍성하게 하고 미국 경제 추락을 예방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노성태 <경제연구소장 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