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가 정책 전환 검토|풍작 계속으로-미가, 시장 기능에 맡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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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쌀 농사가 5년간 내리 풍작을 이루어 주곡의 자급 기반이 정착됨에 따라 정부는 쌀의 소비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한편 이제까지 증산 유인이 되어온 고미가 정책으로부터 가격 경쟁 체제를 강화하는 등 양정의 방향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미곡 생산이 매년 증가, 10년 전에 비해 1천만 섬 이상이 늘어난 3천8백만 섬에 달함으로써 자급 수준을 상회하는 재고 누증이 ▲보관 문제 ▲가격 하락 ▲정부 수매량 증대 압력 가중 ▲양곡 기금 적자 확대 등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미곡이 자급되지 못하던 시기에 입안 실시되어온 정책의 전환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미 지난 6월부터 9분도 쌀에 대한 단속을 일체 중단, 9분도 쌀을 사실상 허용함으로써 쌀 소비 억제를 위해 강행하던 7분도 정책에서 후퇴했으며 요식 업소의 혼식 실시 단속도 완화되고 있다.
현재 서초동 양곡 시장을 통해 서울에 반입되는 하루 1만여 가마의 쌀이 대부분 9분도 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미가 정책도 민간 재고의 증가로 정부가 68년이래 추구해온 고미가 정책의 유지가 어려운 실정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올해의 쌀 예상 수확량은 3천7백50만 섬인데 이중 60%를 넘는 2천2백70만 섬이 통일계 다수확 품종이다.
정부는 이제까지 통일계 쌀에 대해서도 일반미와 같은 높은 가격으로 수매하였으나 올해와 같은 대풍에 과거와 같은 높은 가격 수준으로 농민들의 수매 요구를 모두 들어준다는 것은 재정 형편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올해 추곡 수매를 위해 확보된 재원은 3천5백억원 정도인데 이 자금으로는 작년도 수매 가격과 같은 수준으로 수매한다해도 7백50여만 섬을 소화할 수 있을 뿐이다.
농가의 수매 요구를 모두 들어주지 못하는 경우, 민간 재고분의 다량 출회로 시장 곡가의 하락을 초래, 농민의 손실을 가져오는 것은 물론 통일계 다수확 품종의 경작 기피로 자급 체제의 붕괴마저 가져올 우려를 안고 있다. 이같은 여건 아래서 정부는 이제까지의 고미가 정책을 탈피, 추곡 수매가 인상을 최소한으로 억제하는 반면 수매량을 가급적 확대할 것을 검토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가격 지지에 의한 농업 지원 체제에서 벗어나 생산비 지원과 가격 경쟁 체제로 유도할 것을 구상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같은 기본 입장 아래 경제기획원과 농수산부는 새로운 장·단기 농업 정책의 구체안을 성안 검토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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