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불 문단을 이끄는 문예지 NRF 대전 후 처음 편집진 개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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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파리=주섭일 특파원】「프랑스」문단을 이끌어왔던 월간문예지 「라·누벨·르뷔·프랑세즈』(NRF)의 편집진이 종전 후 처음으로 개편, 비상한 관심을 끌고있다.
70년 전통의 이 문예지는 「앙드레·지드」, 「앙리·게옹」, 「장·프레보스트」 등이 1908년 제1호를 세상에 내놓은 이래 「마르셀·알랑」, 「장·포랑」이 제2대를 맡았다가 「조르지·랑브리슈」, 「도미니크·오리」, 「이오네스코」, 「미쉘·뷔토르」, 「장·뒤투르」 등 새로운 노장들에게 넘겨준 것.
1914년 「프랑스」작가 「폴·부르제」가 「유럽」을 지배하는 강력한 요소로 「아카데미·프랑세즈」「로마」 교황청 독일군부를 지적한 후 1940년 「파리」주재 독일대사가 여기에 「프랑스」은행과 NRF를 추가시킬 만큼 NRF의 위치는 대단한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NRF의 「에스프리」(편집정신)는 문학예술의 상품화를 거부하며 이익을 무시한다는 점.
큰 야망을 지니고 출범한 NRF는 제2호부터 문학논쟁을 불러일으켜 「말라르메」비판자들을 제거하는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1909년 이후 「지드」의 『교황청의 지하실』, 「폴·클로랠」의 『시장에게 한 포고와 인질』, 「알랭·푸르니에」의 『위대한 「몬」가』 등 세기의 대작이 NRF를 통해 발표됐으며 이때부터 작품의 엄정한 선별이 시작되었다.
1925∼1540년간 「장·포랑」이 편집을 맡으면서 「쥘·로맹」, 「앙드레·말로」 「앙리·드·몽테르랑」, 「앙리·미쇼」, 「사르트르」, 「장·지로드」, 「폴엘튀아르」, 「루이·아라공」, 「케노」 등을 NRF가 발굴, 세계문학에 불멸의 공적을 남겼다. 「파리」가 「나치」에 점령당했을 때도 NRF는 발행을 계속했으나 「파리」해방 후 「드골」은 「나치」에 협력했다는 구실로 발행 금지시켰다.
「장·포랑」과 「마르셀·알랑」, 「도미니크·오리」 등이 NRF를 복간시키는데는 무려 7년이 걸려 1952년에야 햇빛을 보았다.
NRF의 복간에 큰 작용을 한 「알베르·카뮈」, 「말로」, 「지드」 등이 「사르트르」와 마찬가지로 주류를 이루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불과 6천부밖에 안나가지만 『현대적 관점에서 재출발한다』는 것이 「랑브리슈」편집장의 선언. 앞으로 1만부 정도의 독자를 확보하겠다는 새 편집인은 「망리야르그」·「새뮤얼·베케트」, 「장·크레르」, 「미셀·뷔토르」, 「이오네스크」등을 9월의 새얼굴로 내세워 「프랑스」의 문학혁명을 예고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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