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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암수술, 자녀 이혼까지 … 가족사 죄다 들춰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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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010년 9월 김황식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현장. 김 전 총리는 대법관과 감사원장을 지내며 두 차례 청문회를 거쳤지만 신상털기식 청문회를 또 거쳐야 했다. 당시 창조한국당 이용경 의원 측이 김 후보자 딸의 아파트 주차장까지 촬영해 파파라치 논란이 벌어졌다. [중앙포토]

#1. 지난해 2월 박근혜 정부의 조각(組閣) 때 한 장관 후보자를 놓고 야당에서 신상 검증에 들어갔다. 야당 의원실에선 후보자의 부모 간에 가압류가 들어간 기록을 물고 늘어졌다. 후보자 부친이 보유한 아파트에 모친이 5000만원의 가압류를 걸어놓은 걸 문제 삼아 따졌고, 후보자 측은 “부모님이 노령이라 기억을 잘 못하신다”고 얼버무렸다. 알고 보니 가압류가 들어간 뒤 3년 후 한 금융사에서 이 아파트에 다시 가압류를 설정했다. 해당 의원실 보좌진은 “채무를 진 부모가 빚 때문에 아파트가 넘어갈까 걱정해서 미리 부부간 가압류를 한 것 같다”고 했다. 부모 간의 가압류 문제는 후보자의 능력 검증과는 무관한 가족의 사생활이라고 항변했지만 야당은 후보자에게 큰 흠결이 있는 것처럼 다그쳤다.

#2.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김황식 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앞두곤 ‘재산 털기’ 과정에서 김 후보자 부인이 암수술을 받았다는 병력이 공개됐다. 당시 김 후보자가 신고한 800만원짜리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야당이 문제 삼은 뒤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김 후보자를 돕던 총리실 인사는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후보자 부인이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뒤 흉터를 가리기 위해 남대문 시장에서 샀다”며 “이걸 해명한다고 부인이 암수술을 받은 것까지 공개할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난감해했지만 결국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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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보자의 능력과 적합성을 검증하는 자리가 돼야 할 인사청문회가 ‘신상털기’의 장으로 전락하고 있다. 새누리당이나 새정치민주연합 모두 여당일 때는 이런 행태를 비난하다가도 야당이 되면 후보자의 신상털기에 주력하는 고질적 관행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능력 검증은 뒷전으로 밀리는 게 현실로 굳어지고 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본인만 아니라 가족과 부모까지 까발려진다”며 인사 검증이 아니라 신상 청문회라고 비판했다. 자녀의 이혼 경력까지 노출되는 망신주기식 신상 청문회가 이어지면서 공직기피 풍조까지 생겨나고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인사업무를 맡았던 한 인사는 “능력과 리더십을 갖춘 적임자를 찾아내고도 인사청문회를 부담스럽게 느껴 고사하는 “해수부장관 후보에 해경 개혁 묻는, 그런 청문회를”

바람에 기용하지 못한 적이 많았다”며 “1, 2순위 후보자가 고사하는 바람에 예비 후보군에 들었던 후보가 장관이 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신상 청문회는 실력·능력과 무관한 문제를 논란거리로 만든다. 남북관계를 실무 지휘할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 3월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22년 전 음주운전이 드러나 망신을 당했다. 류 장관의 범죄경력자료에 1991년 8월 서울 서대문경찰서에서 음주운전으로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은 기록이 나오면서다. 그래도 류 장관은 재산이 적다는 이유로 청문회는 통과했다. 지난해 3월 6일 인사청문회에선 “병역도 문제가 없고 재산도 적은 편인데 도덕적 하자도 발견되지 않았다”(민주통합당 우상호 의원), “바르게 살아온 몇 분”(새누리당 정의화 의원)이라는 칭찬을 들었다. 2000㏄ 쏘나타를 타고 다니던 류 장관이 신고한 재산은 1억2963만원이었다.

 인사청문회가 신상털기로 흐르는 이유는 청와대의 부실 검증도 원인이지만 근본적으론 청문회가 여야 간 정치적 힘싸움으로 변질됐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야가 대결의 정치를 벌이는 상황에서 야당은 청문회를 대통령이 추천한 국무위원 대상자에 대한 흠집내기로 가려고 한다”며 “그러다 보니 정작 전문성과 능력에 대한 논쟁은 거의 없어진다”고 지적했다. 손병권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는 “의원들 입장에선 국민들 이목이 집중되며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청문회에서 센세이셔널하게 가고 싶어 한다”며 “그래서 도덕성 항목에 집중한 단타 위주의 청문에 치중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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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극적인 신상 소재에 집중하는 한건주의 인사청문회는 그때그때 다른 ‘고무줄 잣대’도 야기한다. 세간의 여론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 때 첫 여성 총리 후보자였던 장상 총리 서리는 위장전입이 문제가 돼 결국 국회 청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위장전입 논란이 불거졌던 이명박 정부의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나 박근혜 정부의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은 모두 청문회에서 사과하며 큰 무리 없이 넘어갔다.

 이 때문에 현재의 신상 검증용 인사청문회는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손 교수는 “세월호 참사를 막고 이에 대응할 정책 능력이 해수부·안행부 장관 인사청문회 때 거론된 적이 있는가”라며 “도덕성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이제 청문회를 한다면 해경 구조개혁은 어떻게 할 것이며, 해피아는 어떻게 개혁할지 질의하고 응답하는 청문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병건·정원엽 기자

인신공격성 질의에 발끈했던 총리 후보들

장상(2002년 7월)  “법정에서 범인 다루듯 하면 문제가 좀 된다. 일방적으로 몰아가는 식이라면 저한테 사실관계를 묻지 말라. 공직 후보자를 평가하는 데 너무 일방적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이렇게 용감하게 말하는 것이 실례인 줄 알지만 청문회 품격을 세워야만 다음에 답습되지 않을 것이다.”

정운찬(2009년 9월)  “한 말씀만 올리겠다. …저는 다른 것을 다르다고 얘기 못 하면서 자리를 탐하는 사람은 아니다. …청문회가 입학시험 보는 것보다 백배 천배 어렵고 힘들다. …하지만 아무리 청문회더라도 존경하는 장인과 아들 딸, 집사람과 관련된 이야기는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태호(2010년 8월)   “(부인의 인사 청탁 의혹) 소식을 듣고 저희 집사람이 밤새도록 펑펑 울었다. (의혹을 제기한) 의원님도 가족을 사랑하지 않느냐. 의원님은 제 부인에게 사과해야 한다. 후보자이니 어떤 의혹도 검증돼야 한다. 하지만 앞뒤 확인하면 알 수 있는 것을 아니면 말고 식으로 폭로하는 것은 안타깝다.”

정홍원(2013년 2월)ㅍ   “( 검사 시절에 특정인 봐주기 구형을 했다는 의혹이 나오자) 보고받은 기억도 없다. 오늘 신문을 보고서야 그 사람이 수사 받았던 사실을 알았다. 그 사람을 알지도 못한다. (자료를 살펴보니) 제가 재직할 당시 구속기소한 것으로 확인했다. 심한 추리다. 정말 지나친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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