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선사건의 변조|무엇이 문제이며 어떻게 진전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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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 국회의원들에게 뇌물을 주어 말썽이 된 박동선 사건은 단순한 형사사건에 머무르지 않고 정치적·외교적 문제로 확산되었다.
실재로 어느 나라에서 건「로빙」(자국에 유리하도록 의원들을 유도 또는 압력을 넣는 활동)이 있고 박씨에 대한 기소장에 따르면 그는 8년 동안(67∼75년)의「로비」활동을 통해 20여만「달러」(1억 여 원)를 쓴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런 사건이 뜻밖에도 미국국내정치에「미묘한 파문」을 일으키고 한-미 관계까지 긴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사건을 둘러싼 한-미 관계의 색조를 보면『박을 미국으로 보내라』『못 보낸다』는 단순한 얘기가 아닌 것 같다. 한미관계의「기본양태」의 문제가 깔려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잇단 박동진 외무장관의 회견에서『주권존중의 범위』『국제관례』라는 말이 되풀이되고 있는데서 짐작이 간다.
그러면 미국 측은 이문제의 수사협조 요청에서 한국의 주권을 존중치 않고 있고, 국제관례를 어기고 있다는 얘긴데 어느 면에서 그런 것일까.
박동선 씨를 미국에 굳이 보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양국은 범죄인 인도협정을 맺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은 한국정부에 박을 보내 달라고 할 근거도 없고 한국정부는 보내야 할 의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을 굳이 보내 달라고 하는 것은 억지가 될 수밖에 없다. 박 외무는 수사협조의 호혜성을 얘기하면서 김상근 참사관(미국서 이탈)의 면담요청을 미국이 들어주지 않은 사실을 들었다.
또 범죄인 인도협정이 체결되어 있는 미 일 간에서도「록히드」사건 때 미국은 증회자를 일본에 인도하지 않고 미국의 자체조사를 일 측이 참관한 협조형식을 취했다.
말하자면 범죄인인도협정이 있더라도 그 운용은「자국민 보호」「국가적 자존심」을 견지하는 한계 안에서 이루어진 셈이다.
이런 원칙에서 본다면 박동선 사건의 경우 정부가 무리하게 송환을 추진한다면 이는 자국민보호나 국가적 자존심에 손상을 주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말할 수 있다.
박 외무가 회견을 통해 밝힌「주권존중」이라는 얘기는 바로 이런 뜻일 것이며 말을 바꾼다면 미국의 억지요구를 그리 호락호락 들어줄 수 없다는 얘기다.
아마 박 외무에게 좀더 솔직한 심정을 얘기하라고 했으면『한-미 관계는 소박한 혈맹관계, 전통적 우방이라는 관념을 떠나 떳떳하고 합리적인 관계로 기본양태가 바뀌어야 된다』고 했을지 모른다.
박동선 사건과 연결 지어 미국에서는 대 한 강경 논과 대 한 정책분리론이 엇갈리고 있다. 대 한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 든 가 외교적 압력을 가하라는 다분히 감정적 주장이 전자이며 철군보완 등 대한정책과 박동선 사건은 별개이므로 혼동치 말자는 주장이 후자이다.
철군이나 철군보완정책은 미국의 대 한 정책이라기보다 미국의 기본적 극동전략 또는 세계전략의 일환이다. 따라서 박동선 사건에 의해 미국의 극동전략이나 세계전략에 변화가 생기리라고는 짐작키 어렵다. 그러기에는 박동선 사건이 보 잘 것 없는 단순한「스캔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 한 강경 론이 나오는 이유는 두 가지 밖에 없다. 한-미간의「기본양상」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거나 아니면 미국의 국내정치 적 계산이 있었다는 얘기다.
박동선 사건을 미국에서는「코리아·게이트」라고 부른다. 「워터게이트」사건으로 공화당의「닉슨」이 물러난 것을 생각한다면 민주당의원이름이 많이 오르내린 박 사건은 미묘한 여운을 풍긴다.
도덕정치를 내세운「카터」는 민주당의원들의 상처를 어떻게「도덕적」으로 처리하느냐를 가지고 고민할 것이다. 「파나마」문제·「쿠바」문제 등 때문에 민주당주도의 의회와 나쁘게 지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덮어 둘 수도 없으니까 화살을 한국에 몰아 붙이고 있는 것 같다.
결국 미국의 국내 정치적 필요에 따라 소리를 크게 내는 것뿐이며 내심은 다를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실제로 일본신문은「카터」나 민주당 측이 박 사건의 확대를 경계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처럼 정치적·외교적 문제로 얽혀 버린 박동선 사건은 그 수사협조가 어떻게 진전될 것인가.
박 외무는 13일 회견에서 몇 가지의 새 방안을 제시했다. ①정부가 기소장관련자를 독자적으로 모두 조사한다 ②박씨가 미국을 가도록「스나이더」대사가 직접 설득하게 주선할 용의가 있다 ③미국에서 조사 관이 온다면 조사에 협조해 줄 수 있다는 것이 줄거리다.
첫째, 기소장에 의한 독자적 조사는 국내법 위반여부를 포함할 것이며 사건의 진상을 한국정부로서도 파악하겠다는 얘기다. 그 조사결과를 미 측에 통고해 줄 수 있다는 협조의사가 시사되어 있다.
둘째, 미 대사의 설득주선은 미 대사가 요청할지 여부가 명백치 않으나 그동안 한국정부측에서 박씨를 설득했다는 사실을 미 측이 믿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제시할 방안인 것 같다.
박씨는 미국에 있는 자신의 변호사가 오지 말도록 권했다는 말을 덧붙여 미국에 안가겠다고 했기 때문에 미 대사가 설혹 설득에 나서더라도 아무소용이 없을 것 같다.
세째, 미국 조사 관의 내한조사는 이미 미국에서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재워스키」조사관이 서울에 온다 해도 박동선을 직접 조사하거나 신문할 수 는 없을 것 같다.
법률전문가의 견해로는 한국국민에 대한 외국수사관의 직접조사는 공권력의 침해이기 때문에 ①한국 측 조사를 참관하거나 ②한국기관에 의뢰하는 간접조사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했고 미국기소장의 관련자를 독자로 조사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앞의 두 가지의 수사협조는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전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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