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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총 점검…한국과 외국의 경우|학력에 병든 사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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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얼마 전 미국주간지「타임」에는 엎드려 뻗친 일본의 어린 중학생이 학원선생의 몽둥이 매를 맞는 사진이 실렸다. 잠을 깨우기 위해 머리부터 찬물을 끼얹는 사진도 있었다.
기사제목은『학력에 미친 사회』. 유치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불꽃 튀듯 치열한 진학경쟁을 치르는 나라라고 혹평했다.
일본의「수험전쟁」전초기지는 과외수업학원인「지」과 주말학교.
패전 후 10여 개에 불과하던 이들 학원이 30년 동안 놀랍게도 60만 개로 늘어났다. 일본 초등학교어린이 1천만명중에서 과외공부에 시달리고 있는 어린이는 60%인 6백만 명.
대학진학을 위해 학원에 다니는 고교생과 재수생은 줄잡아 1백만 명.
서울인구와 거의 맞먹는 수의 청소년들이 입시의 멍에를 지고 고역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잠자리에 드는 순간이 가장 행복한 때』라는「도오꾜」의 초등학교 6년 생의 하루는 숨막히는 전투그대로다. 11살 난「다까노」어린이. 하루 8시간의 학교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면 숨돌릴 틈도 없이 다시 책가방을 챙겨 학관으로 향한다.
저녁 9시까지 계속되는 학관에서의 과외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이번에는 가정교사가 기다리고 있다.
학교에서 내준 숙제와 미숙한 과목을 보충하기 위해 자정이 넘도록 가정교사와 씨름을 벌인다.
학교의 정규수업보다 학관과 가정교사로부터 받아야 하는 과외수업시간이 더 길고 힘든 고역이다.
하루 5∼6시간의 잠자는 시간만이 입시속박에서 풀려나는 때.
「다까노」어린이의 이 같은 지겨운 일과는 일본과 같이 학력 제1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불가피한 시련일지도 모른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우리나라의 사정도 마찬가지.
일본의「아사히」신문은 우리나라 진학경쟁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서울의 새벽5시30분. 중 심가 종로에 멈춘「버스」와 지하철. 대중교통수단에서 몰려나온 학생복차림의 검은 인파는「학원」간판으로 얼룩진「빌딩」숲에 빨려 들어간다.
이들은 수험준비 전문학관의 새벽강의를 듣기 위한 한국의 고교생 및 재수생. 이들의 가방 속에는 아침·점심용의 도시락 2개가 들어 있다.
학원 수는 모두 2백50개. 종합 반 입학등록금은 5만원. 수강료 월 1만2천 원. 학원재벌이 이 돈으로 뿌리를 내리고 호경기를 누린다.
명문교진학을 뒷바라지하는 극성부모의 대명사는「치맛바람」. 이 치맛바람은 중-고교 무시험진학에 다른「학력측정의 미지수」가 주는 불안 때문에 값비싼「그룹」과외에 열을 올리고 있다.
매주 영어·수학 2시간, 국어1시간의 특별개인과외의 평균 월 수는 30만원.
인기 있는 강사는 월 수 2백 만원을 올리는 고소득층으로 성장하고 있다.』(77년 5월4일자).
이 신문은 한국이 일본과 같은 치열한 수험경쟁에서 청소년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73년부터 시행한 고교평준화가 오히려 학원과외·「그룹」과외공부의 과열을 빚는 등 부작용을 낳고 있음을 지적했다.
중-고교 무시험진학제도가 학력측정의 불안을 더해 과중한 과외수업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고교졸업반 학생의 일과도 언제부터인지 일본 못지 않게 빡빡해졌다.
잠시도 긴장을 풀거나 휴식을 취할 여유가 없다.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들마저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학교 정규수업·보충수업·과외수업을 합쳐 하루 공부시간은 12∼13시간.
그것도 모자라 아예 학교에서 밤을 새우는「합숙공부」까지 등장했다.
서울시내 A고교생 김인식군(17). 새벽 6시면 아침밥을 거르거나 먹는 등 마는 둥하고 집을 나선다.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만원「버스」에 시달리고 나면 등교 길에 벌써 맥이 빠지고 만다. 그러나 학교수업을 끝내고 나서 다시 밤 10시까지 학원과외공부를 해야 한다.
이때쯤이면 김 군의 몸은 파김치가 되지만 집에 돌아오면 다시 가정교사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이래서 입시경쟁은「입시지옥」으로 표현 된지가 오래다.
한눈 팔면 수모의 진흙수렁인 열반(열반=일명 돌 반)에 빠진다. 자학과 주위의 멸시 속에 자포자기에 빠져 자칫하면 폭력을 일삼기까지 한다.
나라와 인종은 달라도 명문대학을 겨냥하는 입시경쟁은 어디서나 예외 없이 비슷하다.
미국의「하버드」「예일」대학, 영국의「옥스퍼드」「케임브리지」「프랑스」의「소르본」대학, 소련의「모스크바」대학에 들어가려는 세계의 고교생들은 우리나라나 일본의 고교생들보다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중학교에 진학할 때부터 능력과 적성에 따라 고등교육기관에의 진학을 가늠할 수 있어 우리나라 고교에서와 같은 뒤늦은 입시과열경쟁의 부작용은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 입시제도의 개혁은 과언 바람직한 것인가.
세계 속의 입시경쟁을 통해 백년대계를 설계할 수 있는 바람직한 입시제도를 찾아보자.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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