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품 외설의 한계|뚜렷한 선긋기 어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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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순수문학 작품 속에서 성문제를 다룰 경우 그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하는 문제가 최근 문단의 새로운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염재만씨의 소설 『반노』가 69년 외설 혐의로 기소되어 75년 12월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은바 있는데도 새삼스럽게 이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까닭은 최근에 이르러 도서잡지윤리위원회(위원장 강영수)가 각종 잡지의 연재소설 및 문학 출판물의 외설 기준을 종전 보다 더욱 엄격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모 잡지에 연재 중이던 이정환씨의 소설 『혼구멍 청춘』이 중단되기에 이르렀으며 한승원씨의 창작집 『앞산도 첩첩하고』가 순수문학 작품으로서는 처음으로 경고 처분을 받았다.
이씨의 경우는 그 작품을 연재하던 잡지가 학생을 대상으로 한 잡지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선정적이라는 것이며 한씨의 경우 그 창작집에 수록된 중편 『폐촌』의 내용 중 「일부분」이 『부도덕하고 외설적으로 표현되어 독자들에게 혐오감을 줄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폐촌』에는 한 여성과 그의 애견과의 「섹스」장면이 나오는데 3, 4년 전 출간된 이문구씨의 작품집 『해벽』에도 이와 유사한 장면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 두 작품은 모두 평론가들에 의해 수작으로 평가받은 바 있다.)
문학작품 속에서의 외설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문인들이 『한계가 있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으나 『외설적으로 표현된 부분만으로 외설 여부를 따지느냐』 『작품 전제를 놓고 따지느냐』에 대해서는 후자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반노』에 대한 대법원 판결도 『문학에 대한 음란성 여부는 작품 중 인간의 성행위에 대항 향락적이고 유희적인 장면을 묘사한 작품의 어느 일부분만 마로 떼어놓고 논할 수 없으며 그 작품 전체와 관련시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그렇다면 부분적인 표현은 아무리 심해도 좋으냐는 데 도서잡지윤리위원회의 고민이 있는 것 같다. 즉 문학작품의 외설적인 표현에 한계가 있다면 그 한계는 「전체」에 대한 것일 수도 있지만 「부분」에 대한 것 일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
문학평론가 김윤식씨도 『작가가 어떤 문제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는가는 어디까지나 작가의 자유에 속하는 일이지만 요즘엔 부분적으로 성문제가 지나치게 묘사되고 있어 저항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그것이 독자에게 불쾌감을 주었다면 그것은 작가의 기법에 관한 문제라는 것.
그러나 작가들의 견해는 다르다. 황석영·최인호씨는 『작가 자신이 느껴야 할 문제이므로 작가가 자율적인 문제로서 처리하도록 맡겨 주어야 한다』는 것. 황씨는 『남녀의 성관계를 묘사하는데 있어서 그것이 반드시 그런 방식으로 표현되지 않는 경우 작품 전체가 죽어 버릴 염려가 있다 할 때 외설스럽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그 같은 표현을 피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최씨도 『예술 작품을 음식처럼 짜다 달다 할 수 있겠느냐』면서 『예술 작품에 대하여 짜니까 싱겁게 해 달라. 다니까 덜 달게 해 달라는 요구는 무리』라고 말했다.
한편 이정환씨는 『내 작품이 윤리위원회에서 많이 이야기되는 줄 알고 있지만 나는 성관계를 노골적으로 표현한 일이 없다』고 주장하고 『작품 속에서의 성문제를 너무 규제하다 보면 작가의 의욕을 죽이는 것이 된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들 작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작가가 대중을 의식하는 것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그 하나는 작가가 대중을 따르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작가가 대중으로 하여금 스스로 따라오게 하는 것인데 전자를 취하는 작가일수록 외설적인 표현으로 대중과 영합을 꾀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순수문학 작품 속에서의 음란성의 문제는 쉽사리 결말이 날 문제가 아니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성문제 표현의 한계는 높을 수도 있고 낮을 수도 있으며 대중 의식의 차원에 따라 같은 표현이라도 음란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으며 음란하지 않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 문제는 김씨의 지적처럼 올바른 비평 풍토의 조성으로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대중과의 의도적인 영합을 규제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 같다. <정규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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