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사회화 속의 여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남녀 평등과 한국 여성의 지위 향상을 겨냥하며 제작된 교육영화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본보 작보). KEDI(한국교육개발원)가 제작 완료 한 16㎜「킬러」영화 『산업사회와 여성』을 비롯하여, 현재 제작 준비중인 이화여대의 여성학 강의용 영화, 그리고 새 마을 연수원의 사회 지도 반용 『한국의 여성』(가제) 등이 그것들이다.
한국 사회의 각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들의 생생한 모습을 소개하면서 이제는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할 당당한 일꾼임을 강조하려는 것이 그 공통적 주제라는 것이다. 공장 지대의 기능공에서부터 「택시」운전사·철도 건널목의 간수·비행기의 조종사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농어촌에서 움직이는 여성의 일손, 세계 무대를 수놓는 여성 예술가들의 모습 등을 주로 추적하면서 한국 사회의 고루한 여성관과 남성의 편견이 빚어내고 있는 남녀 불평등의 현장을 고발하고, 새로운 여성관을 고취하려는 취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영화의 출현은 두 가지 의미에서 중요한 뜻을 지닌다. 하나는 한국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그 만큼 현저하게 늘어남으로써 이제 그들에 대한 사회적 처우의 문제가 공통적 문제의식으로 인식됨직한 때가 도래했다는 점일 것이다.
또 하나는 이 같은 문제의식을 줄거리로 한 본격적 사회 교육 영화가 제작됨으로써, 각계의 광범위한 참여를 전제로 한 토론의 광장이 마련되리라는 점이다. 이 두 측면은 우리 사회의 건전한 발전 방향을 모색케 하는데 있어 매우 효과적인 「오리엔테이션」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성과를 기대해 볼 만하다.
그러나 실상, 남녀 불평등의 문제는 비단 한국 사회에만 국한된 일이 아닐뿐더러, 또 작금에 이르러 별안간 대두한 문제라고도 할 수 없다.
다만 이 같은 영화가 제작, 상영됨으로써 문제의식의 제고와 아울러 오늘날 한국 사회에 있어서의 남녀평등의 문제, 모는 여성의 권리와 행복 등 우리 모두의 절실한 당면 문제에 대해서 마치 한번 기본적으로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곧 우리나라 사회 교육 분야에 하나의 새로운 발전적 계기를 마련해 줄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형식적 또는 기계적인 척도에 의한 평등이란 요컨대 개념상의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생리적·육체적으로는 물론, 특정 사회 안에서의 사회적 직분 상 결코 같을 수가 없는 남성과 여성의 갈등 문제란 그러므로 실질적이며 합리적인 기준에 의한 사회적 「컨센서스」를 전제로 하는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사회 인류학자들의 보고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뉴기니아」의 「참불리」족 사회 안에서는 남성은 주로 춤과 조각·편물 등 의예적 예술적인 활동에만 종사하고, 대신 여성이 가구를 거느리며 모든 경제활동을 전담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고도로 발달한 산업사회인 「벨기에」에서처럼 여성에 대한 참정권조차 겨우 최근에 와서야 인정한 사회도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런 뜻에서 『산업사회와 여성』이란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한국 여성들-공장의 기능공, 직장의 OL, 「택시」운전사, 농어촌의 여성 일손들에 대한 지나치게 부상한 처우와 이를 뒷받침해 온 제도나 사회적 관행이 하루속히 시정되어야 함은 더 말할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오랜 기간 한국이라는 전통 사회 안에서 배양되고 계승된 한국적 어머니·아내·딸로서의 겸허하고 헌신적이며 우아한 한국 여성상이 지나친 남녀평등의 구호 때문에 손상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인형의 집을 박차고 나간 「노라」역시 결국은 가정에 돌아오고서야 여성으로서의 권리와 행복을 되찾을 수 있었음은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