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ngBackOurGirls … 인증샷 쓸모없다는 주장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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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의 이슬람 무장단체 보코하람에 납치된 여학생들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12일(현지시간) 납치 29일 만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영상에서 보코하람의 지도자 아부바카 셰카우는 수감된 동료들과 여학생들의 교환을 주장했다. 히잡을 쓴 여학생들이 코란을 외우며 기도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우리 딸들을 돌려달라’ 인증샷을 올린 파키스탄 소녀 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 [트위터 캡처]

“친애하는 세계인이여, 당신의 해시태그(#)는 소녀들을 집으로 데려올 수 없습니다.”

 지난달 나이지리아에서 이슬람 무장단체 보코하람에 납치된 276명 여학생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며 트위터에서 ‘우리 딸들을 돌려달라(#BringBackOurGirls)’를 공유하거나 ‘좋아요’를 누른 사람들에겐 충격적인 도발이다. 아프리카 매체 ‘컴페어 아프리크’의 공동 편집장 주모크 발로군의 주장이다.

 나이지리아계 미국인인 그는 9일 영국 가디언 온라인판에 이런 제목의 신랄한 기고문을 올렸다. 그의 비판으로 ‘우리 딸들을 돌려달라’ 캠페인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의 슬랙티비즘(Slacktivism)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슬랙티비즘이란 키보드 앞에서 세상을 바꾸려는 태도를 뜻한다. 해이함(Slack)과 행동주의(Activism)의 합성어다. 행동은 하지 않고 손가락만 놀린다는 얘기다.

 피랍 여학생들을 위한 캠페인에 미국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가 동참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우리 딸들을 돌려달라’는 해시태그는 100만 번 이상 공유됐다. 여배우 에마 왓슨과 앤 해서웨이, 코미디언 엘렌 드제네러스, CNN 간판 앵커 크리스티안 아만푸어,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등이 자필로 쓴 ‘우리 딸들을 돌려달라’ 팻말을 들고 인증 사진을 찍었다.

 국제사회의 연대가 무엇이 문제라는 걸까. 발로군의 주장은 “소녀들을 데려올 수 없을 뿐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군사 세력의 확장을 부추기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로 요약된다. 수백만 번의 리트윗은 서방이 아프리카에서 더 많은 군사작전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었다. 이는 결국 나이지리아 군부에 대한 면죄부가 된다. 나이지리아 인권단체에 따르면 나이지리아 군부는 북동부 이슬람 무장세력을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민간인 학살을 자행해 왔다. 2010년부터 2000명을 사살했으며 성폭행과 폭력을 저질러 왔다. 프랑스·영국·이스라엘까지 수색 지원을 자청하면서 군은 더 많은 힘을 얻게 됐다.

 결국 나이지리아 국민은 무능함의 극치를 보여준 굿럭 조너선 정부와 군부를 직접 심판할 기회도 잃게 됐다. 복잡한 큰 그림에 대한 이해 없는 순진한 해시태그 사용이 사태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몰고 갔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이런 상황은 처음이 아니다. 발로군은 할리우드 유명 인사들이 극찬하면서 SNS에서 뜨거운 반응을 일으킨 ‘코니 2012’를 예로 들었다. 미국 비영리단체 ‘인비저블 칠드런’이 제작한 이 영상물은 우간다 ‘신의 저항군(LRA)’의 리더 조셉 코니의 만행을 다뤘다. 냉혈한 코니를 제거해야 한다는 여론이 불같이 일었고 미국은 특수부대를 급파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우간다는 여전히 불안정하며 코니는 붙잡히지 않았다.

 해시태그 민주주의에 대한 피로감은 커지고 있다. 미국 작가 네스린 말리크는 슬랙티비즘이 ‘무지→위키피디아 참조→분노→연대의 해시태그→고집스러운 자기 집착’의 5 단계를 거친다고 비판했다. 나이지리아계 미국 작가 데주 콜도 “4년간 나이지리아인들은 보코하람이라는 살인 괴물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왔다. (감사하지만) 당신들의 새 관심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는다”고 적었다.

 ◆보코하람 “협상하겠다”=보코하람 리더 아부바카 셰카우는 12일 납치된 여학생들이 모여 있는 동영상을 공개하면서 “수감 중인 보코하람 요원들과 맞바꿀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AFP통신이 입수한 17분짜리 동영상에선 지난달 납치된 여학생 130여 명이 몸 전체를 가리는 히잡을 입은 채 기도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두 소녀가 “기독교인이었지만 이슬람으로 개종했다”고 말하는 장면도 나온다. 하지만 아바 모로 나이지리아 내무장관은 기자회견을 갖고 보코하람 측의 제안을 거부했다.

전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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