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보유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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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외환보유고가 과대 평가되고 있다는 것은 거의 공지된 사실이다. 그런데도 외환당국이 굳이 과장된 보유고를 고집한 것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쉽게 짐작된다. 만성적인 국제수지 적자기조에서 국내외적으로 경제의 신인도를 높여보려는 의도가 외환보유고의 과장이라는 형태로 발현된 저간의 사정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이 같은 경제현실의 왜곡은 단기적인 호도의 방편으로는 유익할지 몰라도 결국은 잘못된 인식을 일반화시켜 그릇된 정책결론을 도출하는 오류를 범하게 만들 수 있다. 특히 올 들어 외환부문을 통한 통화증발이 격증함에 따라 보유고의 적정수준여부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의가 집중되고 있는 현시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외환보유고와 관련된 일반의 가장 큰 오해는 보유고 수준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정책목표인 것처럼 착각하는 일이다. 물론 개발저위단계에서 엄중한 외환관리제의 채택이 불가피하고, 대외준비의 일정수준 유지가 하나의 단기목표로 제시될 수 있다.
그러나 원래는 대외준비란 여러 가지 다른 정책의 집행결과로 나타나는 자발적 거래를 사후적으로 보정하는 조정수단으로 유보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기본적인 도식으로는 경상거래나 장기자본거래의 결과 일시적인 불균형이 나타났을 때의 조정수단이 바로 외환보유고와 단기자본거래다.
그런데도 지금까지는 외환보유고의 축적자체가 큰 정책목표인 것처럼 인식되어온 탓으로 보유고가 과장되지 않았나 싶다. 문제는 그것을 현실화했을 때 우리의 진정한 보유고가 얼마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외적인 준비수요를 근원적으로 안정시키는 정책구성이 더욱 긴요하다는 점이다. 무리를 해서 과장된 외환보유를 집착하게 만드는 기본요인은 아직도 국제수지구조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외환보유고를 현실화한다는 것은 곧 대외준비를 본래 의미대로 정통적인 국제수지조정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의미와 다를 바 없다. 따라서 그것이 가능하려면 지금보다 일층 안정적인 무역·통화정책을 지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당위에 충실하기에는 단기적 애로가 너무 많다. 외환누적에 따른 통화압박이 그렇고, 수입자유화 압력이 또한 그렇다.
따라서 현실화된 보유고수준의 적정선 여부에 대한 판단은 어떤 측면에서도 일의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되며, 외환·통화·무역정책의 더욱 정교한 조합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에 따르면 우리의 현실보유고는 20억「달러」에 불과하다.
이 정도의 수준에서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여지는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때문에 통화당국은 일면 장기적인 수입자유화 추세와 보조를 맞추면서도 제약된 범위에서나마 이를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당국이 역점을 두고있는 외환집중제의 단계적 완화도 통화마찰을 줄이는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또 비용·수익이란 관점에서 보유외환의 수익적운용을 다각적으로 검토하는 일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은 역시 대내외 균형의 조화를 통해 불필요한 대외준비수요를 원천적으로 절감하는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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