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증만 더해주는 신안 유물 공개기피, "쉬쉬"할 명분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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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신안 해저 인양유물 가운데 주요한 고려청자가 나왔음에도 공개하지 않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학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문화재관리국은 지난해 1, 2차 작업을 직접 실시했으나 『허술하고 무계획한 발굴』이란 비난이 일어나자 금년 여름의 3차 작업에선 별도의 인양조사단을 구성하는 대신 보도를 아주 통제해왔다.
그래서 3차 발굴현장에는 보도진의 접근을 제지했고 관계학계인사의 참관을 허용하거나 초청하는 것도 일체 중지했다. 그 대신 50일간의 발굴기간에 몇 차례 일부유물과 인양점수만을 알려줄 정도였다. 그러나 발굴 관계자들 사이에는 『매우 중요한 물건이 나왔다』는 소문이 돌았고 그 소문뒤끝에는 구구한 억측이 꼬리를 물고 있다. 국보급의 고려청자 매병과 상감대접이 나왔다는 것이나 원대 청자잉어식이병이 1억원짜리는 되리라는 등은 그러한 예.
심지어 도금은잔이며 목동이 물소를 타고있는 철채기우연적, 동물형상의 용기 등 희한한 물건이 적지 않다는 소식이다.
문화재관리국 최학수 관리관은 발굴작업이나 공개에 관한 사항은 일체 인양조사단에 위임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윤무병 조사단장(충남대 박물관장)은 현장에 관리국에서 나와 보도관계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유물인양 이외의 일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부인했다.
오히려 윤 단장은 『구태여 공개를 시원스럽게 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그렇게 보면 당국이 상부에 미처 보고하지 않은 채 먼저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려지는걸 주저한 것으로 해석되며 그런 사례는 경주고분 발굴 때도 마찬가지였다.
김정배 교수(고려대)는 관에서 주도하는 발굴이란 자칫 그런 폐단을 빚어내기 쉽다고 지적, 『여러 사람의 의견이나 조언은 때때로 발굴종사자들에게 부담을 주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원칙적으로 통제를 않는 게 좋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성급한 성격 구명이나 결론을 내리지 않고 현상만을 공개한다는 것은 국민의 궁금증을 위해서든, 학계의 협조를 얻는 점에서든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김원룡 박사(서울대박물관장)는 외국에서의 발굴이란 대체로 장기에 걸치게 되므로 일반관람객을 위해 현장에 TV수상기를 설치, 모든 상황을 보여주는 예도 있다고 말한다. 발굴은 어디서나 많은 호기심과 화제를 불러일으키게 마련인데 그 많은 사람까지 발굴현장에 넣을 수 없기 때문에 그 같은 배려까지 하는 것이다.
손보기 박사(연세대박물관장)는 『발굴도중에 공개하는데는 여러 가지 애로가 있지만 일체 비밀에 붙여 두다보니 사후 보존처리문제도 그렇게 돼버려 궁금한 일이 많다. 미진한 보고서를 낸 뒤에 유물을 다시 보기 어려운 것이 무슨 관습처럼 돼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발굴현장이나 발굴품이 국가기밀에 속할 리 없다. 또 소수인의 전속물도 아니다. 다만 많은 사람의 접근으로 혼란과 파괴가 빚어지는 것을 막고 또 학문적으로 충분히 검토할 여유를 갖기 위해 개방공개 되는 것을 늦출 따름이다.
이번 인양작업과 보존처리 상황을 옆에서 계속 지켜본 국립영화제작소의 촬영「팀」은『때때로 어떤 작업현장은 즉각 TV로 방영하면 좋았을 장면이 꽤 있었는데 아까웠다』는 얘기. 영화제작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제한된 경비로 일일이 다 기록할 수 없었다는 토로이다.
우리 나라의 해양발굴은 신안해저 유물인양이 그 첫 시도. 그것도 졸지에 주어진 힘겨운 작업이므로 학계의 중지를 모아야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럼에도 당국은 학계인사의 공동참여를 꾀하지 않으면서도 신안 앞 바다의 작업현장에 문인 4명을 참관시킨 적이 있다.
그런 처사는 발굴을 「쇼비니즘」화 하려는 의도로밖에 해석되지 않으며, 오히려 해양학·조선학·해양동식물학·보존과학계 등 보조적 학문의 참여가 절실하다는 게 학계의 공통된 요청이다. 발굴에 연습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며 소수인의 독단이나 전용화는 국가적 대사업일수록 더욱 금물.
그래서 이번 기회가 이 황무지분야에 올바른 전통을 마련하고 인재를 기르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학계는 한결같이 제의하고 있다. <이종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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