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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적·연대 등 궁금증 투성이 모든 기대 선체인양에 쏠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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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신안해저유물 인양작업이 7월말로 3차 작업을 마치자 무역선의 국적, 유물의 평가, 앞으로의 작업과정 등 대한 학계의 의견이 엇갈려 화제의 꼬리를 물고 있다. 인양조사단(단장 윤무병)은 해저무역선 화물의 4분의1 정도가 이제까지 인양됐으리라 보고있는데 인양 총 점수는 1만3천여 점. 그 중 동전이 7천여 점, 도자기가 5천 점에 달한다. 조사단은 오는 9, 10월에 4차 인양작업을 강행하자는 의견이 없지 않으나 조류와 일기로 보아 내년 4월에 속개할 방침. 따라서 선박인양 단계까지는 수년이 더 걸릴 것으로 내다보인다. 이런 터여서 세간의 여러 가지 이론은 성급한 추리. 조사단이나 학계는 매우 조심스럽게 해저의 수수께끼를 풀이하고 있는데 그들 견해를 종합해본다.

<선박의 국적>
신안 해저에 침몰돼 있는 선박에 대하여 최근 이용범 교수(동국대·동양사)가 고려의 선박일수도 있지 않느냐는 이론을 제기, 학계에 커다란 파문을 던지고 있다.
유물인양 조사단의 발표는 원대선박으로 일관해 추정해오는 터인데, 이 교수는 꼭 중국선박일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반론. 그러면서 고려에서도 그만한 배를 지을 능력이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김원룡 박사(서울대박물관장)는 『아무런 확증도 없이 혼란만 빚게 하는 허튼 소리』라고 일축. 이제까지 원대선박으로 추정해 온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반박이다.
조선공학계의 원로 김재근 박사(서울대공대)는 배를 접한다해도 국적을 판별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인데 현 단계로써 왈가왈부란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다만 유물의 내용에 따라 시대와 선적을 추정하는 것이겠고, 또 배 측면의 2중 현판은 한국선박에서 찾아볼 수 없는 중국양식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용범 교수가 재기한 국적문제 중에는 중국의 동전이 그렇게 많이 유출될 수 없다는 점을 들었다.
즉 원나라에선 동전의 해외유출을 엄금했으므로 『그 동전을 마음껏 가지고 원의 관리가 많았던 고려의 심장부(개성인근)를 유유히 회항해 일본으로 간다는 게 이상하다』고 했다.
그러나 김원룡 박사는 『법을 어기는 자가 많아서 엄벌형이 생겼을 것이며 만약 외국인이면 그 많은 분량을 반출해내기 더욱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 무역선이라면 원대 동전이 한반도에서 적잖게 발견돼야 할 것인데 실제로는 정반대. 원대 것이 없는 반면 북송 동전이 대부분이다. 이에 비해 일본에선 한번에 4만점의 동전이 출토된 예가 있다고 국립박물관 정양복 학예연구실장은 뒷받침했다.
곧 중국 화폐는 주로 일본에서 무역해다 썼기 때문이며 그 대가로 일본선 사금과 목재를 반출했다.

<유물의 평가>
세간의 가장 큰 궁금증은 이제까지 인양된 유물이 모두 얼마마한 가치(가격)로 평가되겠느냐는 점이다. 물론 이것은 조사단이나 학계, 심지어는 골동상가에서도 어림짐작을 못한다.
해저유물이 도굴돼 거래한 값은 청자대반이나 청자환이대병 등의 경우 l, 2백만원. 대접이나 소품들은 20만∼30만원에서 몇 만원에도 매매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이들 매매가는 국내에서 중국도자기의 거래가 거의 안돼 시세가 없는 까닭.
만약 외국에서 경매에 붙여진다면 적어도 수 배 내지 10배가 되게 마련이다.
이번 인양된 5천 점에 달하는 도자기는 대접·접시·주전자·연적 등 같은 종류가 부지기수.
하지만 개중엔 우수한 것이 적지 않아서 일본의 동경국립박물관 동양관에 수장돼 있는 수준을 능가한다는 게 박물관 관계자들의 말이다.
신안 해저 무역선에 실린 도자기는 대체로 양자강 유역의 민간가마(민요)에서 구워진 것.
그래서 옛 황실「컬렉션」으로 이루어진 대만의 고궁박물원 소장품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또 우리 나라 국립박물관엔 1천6백여 점의 송원대 도자기가 있지만 이것과도 이질적이라고 최순우 박물관장은 말한다. 즉 우리 국민의 취향이 달랐던 까닭이며, 특히 14세기 무렵은 우수한 고려청자가 있으므로 중국 민요제품을 수입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인양 전망>
해저유물의 인양작업은 아직 초반전. 잠수사들이 개펄을 더듬으면 도기와 동전류가 먼저 잡힐 만큼 무수히 흩어져 있지만 이번 3차 작업에선 선체에 접근, 자기를 우선적으로 건져냈다고 한다. 따라서 「피크」가 될 선체인양작업은 수억 원의 예산과 많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현재 연대추정은 가장 연대가 낮은 지대통보(1311년)를 상한으로 하여 청화백자가 출현되기까지의 사이, 즉 1320∼30년대로 보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청화백자가 발견된다면 이런 추정도 수정되게 마련이다. 인양 도자기에는 글씨가 쓰인 종이와 헝겊조각이 발견됐으나 연대나 지명, 혹은 화물에 대한 결정적 자료는 얻지 못했다. 그러나 목찰이나 죽찰, 혹은 항해일지에 대한 기대는 아직도 부풀어 있다. <이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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