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쓴 할아버지 라종억의 육아일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지난 3월 손녀 유지와 초등학교 입학식에 참석한 라종억 이사장. [사진 라종억]

할아버지가 시로 육아일기를 썼다. 예순에 얻은 첫 손녀에 대해서다. 시집 『유지 신발이 점점 커진다!』를 펴낸 라종억(67) 통일문화연구원 이사장 얘기다. “할아버지가 손녀에 대해 시를 쓴 건 아마 세계 최초일 거라고 합니다.” 라 이사장은 시집을 펴낸 소감을 전했다.

 시집엔 손녀 ‘유지’가 태어난 2007년부터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함께 웃고 울던 순간들이 담겨 있다. ‘손가락을 접으며/덧셈을 가르친다/“두 개 접고 세 개를 더 접으면 뭐가 되지?”/다섯이라는 답 대신/유지는 “주먹이 돼요” 한다’(‘유지의 명답’)

 손녀 유지의 어디가 이렇게도 예쁜 걸까. 그는 “손녀만한 보약이 따로 없다”면서 손녀자랑을 늘어 놓았다. “손녀 애가 수줍음이 있으면서 또 담대해요. 좀 부끄러운 듯해야 애 같잖아요? 그러면서 웅변대회랑 승마대회에 나가서 우승을 했어요.” 시집에서도 그의 이런 생각은 드러난다. 그는 “요즘 자녀가 적은 가정에서 너무 아이들을 버릇없이 키우는 것 같다”며 “아이들은 천진함과 수줍음, 그리고 겁이 있어야 좀 애들 같다”고 적었다.

 라 이사장의 손녀 사랑은 그가 받은 내리사랑 때문이다. 선친이 51세 때 그를 낳았다. 독립운동가로 국회부의장을 지낸 백봉 라용균 선생이 라 이사장의 아버지다. 시집을 내는 게 단순히 손녀자랑처럼 비칠 수도 있어 걱정도 됐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과 ‘사랑의 기쁨’을 공유하기 위해 시집을 냈다.

 그는 이 시집이 ‘사랑의 교본’이 됐으면 한다. 2000년 시인으로 등단한 라 이사장은 다수의 시집과 수필집을 펴낸 문학가이다. 앞서 1998년에 선친의 유업인 민족평화와 통일의 염원을 계승하기 위해 사재를 털어 통일문화연구원을 세우기도 했다. 그는 자신과 같은 ‘손주바라기’들에게 조언했다. “애지중지 손주들을 키우다가 자주 못 보게 되니 우울증에 걸리는 친구들도 있다고 해요. 하지만 또 나는 내 삶을 살아야 하죠. 자신의 세계를 확보하면서 사랑을 나눠주세요.” 라 이사장은 13일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에서 출판기념회를 연다.

위문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